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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원 모텔방서 탄생한 기업, 뉴욕증시 상장시킨 교포 2세[BreakFirst]

입력 | 2024-12-08 07:00:00


뉴욕 증시 상장 기업 ‘피스컬노트’는 재미교포 2세인 팀 황(32·한국 이름 황태일)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30대 초중반의 최연소 아시아계 뉴욕증시 상장사 대표라니…. ‘엄친아’라는 표현 이상으로 그저 다른 차원에 있는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똑똑해서’라는 표현만으로는 지금의 그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사람 모두가 황 대표처럼 사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가 걸어온 굵직한 순간들을 짚어봤습니다.

황 대표를 인터뷰한 〈브렉퍼스트〉팀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관성에 따라 살아가더라도 충분히 남들이 부러워할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그걸 깨뜨리고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원동력은 ‘사명(使命)’에 있었다는 것. 황 대표의 사고방식과 마인드를 함께 탐구해 보시죠.

팀 황 피스컬노트 대표는 21살의 나이에 친구 2명과 함께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가 하루 7만 원짜리 모텔방에서 1달러짜리 햄버거를 먹으며 피스컬노트를 창업했다. 피스컬노트는 설립 9년 만인 2022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에 성공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1200여 개의 유니콘 기업이 있는데, 이는 올림픽 출전 선수(약 4000명)가 되는 것보다 3배가량 더 어렵다는 뜻”이라며 “유니콘 기업이나 신규 상장(IPO) 기업이 되려면 그만큼 사업에 몰입해야 하는데, 완전히 몰입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사업 시작을 추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민 1세대’ 부모는 안정 바랐지만…
황 대표가 깨야 했던 관성은 재미교포들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아메리칸드림’이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 해외여행조차 지금처럼 보편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니 낯선 땅에 정착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자식들만큼은 미국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어 부모가 겪은 어려움을 겪지 않길 바랐습니다.

반면 아들은 ‘정치인’이라는, 사뭇 다른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로스쿨에 진학해 검사가 된 뒤, 정치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의회에 출마해서 정치 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진로인 데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진입하기에는 높은 장벽인 듯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황 대표는 부모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아들은 불안정성에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스타트업 창업을 하고 싶다고요.

팀 황 대표가 2009년 몽고메리 카운티 교육위원회 학생 위원으로 출마할 당시 선거 홍보 포스터. ‘몽고메리 카운티 퍼블릭스쿨’ 홈페이지 캡처


“집안에서 큰 폭탄이 터지는 분위기였어요. 스타트업은 정말 부모님의 예상 밖의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전형적인 삶이나 진로에 갇히고 싶지 않았어요. 저의 독립성, 그리고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싶다는 점이 매우 중요했거든요.”


노숙자 돕다 비영리재단 설립 나선 중학생
중학생일 때, 그는 노숙자에게 담요나 음식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보통은 보람이나 안쓰러움을 느꼈을 텐데 그는 달랐습니다. ‘기부금을 모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은 재정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데.’ 기업가적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고민하던 그는 ‘오퍼레이션 플라이(Operation Fly)’라는 이름의 비영리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선배와 후배의 과외 수업을 중개하는 식의 사업을 벌였습니다. 후배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지불해 과외를 받으며 공부를 할 수 있고, 선배는 과외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출로 빈곤층을 돕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3, 4년이 됐을 무렵 연간 매출은 70만 달러(약 9억9000만 원), 수익은 20만 달러(약 2억8300만 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인 돈으로는 수천 개의 가방, 학용품이나 세면도구, 샴푸 등을 샀습니다. 가방에 물건을 담아 주말마다 워싱턴DC, 볼티모어, 시카고, LA, 토론토 등의 노숙자와 극빈층 학생들에게 나눠줬고요.

“2007, 2008년 미국에서는 주택 위기로 노숙자가 늘었거든요.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노숙자 문제가 저에겐 ‘해결하고 싶은 문제’로 느껴졌어요. 돈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사회적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사업에 방정식이 있다면 이익은 그 절반에 불과할 뿐, 나머지 절반은 제품이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로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입니다.”


오바마 캠프 활동이 준 교훈
고교 시절에는 정치 참여에 열심이었습니다. 굵직한 활동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오바마 대선 캠프, 다른 하나는 메릴랜드주의 몽고메리 카운티 교육위원회입니다. 분명 정치 활동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조직을 경영하는 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가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던 당시 나이는 16세. 당시 오바마 캠프는 정계에서 처음으로 아이폰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활용해 청년들과 소통에 나섰다고 하는데요. 황 대표는 필드 관리자로서 펜실베이니아주, 노스캐롤라이나주 등과 같은 경합 지역에서 소셜미디어,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18~30세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도록 독려했습니다. 오바마 당시 후보가 젊은 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실제로 2008년 대선은 젊은 세대의 참여율이 높았던 선거 중 하나인데요. 기술이 정치 참여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스타트업 창업자로서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을 어떻게 운영했는지 자주 떠올려보곤 합니다.”

그는 리더십의 가치와 조직을 구축하는 방식 중 많은 부분이 오바마 캠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의상달(바텀-업) 방식의 도입, 투명한 조직 운영 등의 요소입니다.

16세의 팀 황 대표가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투표 독려 활동을 펼치고 있다. 팀 황 대표 제공

이듬해 황 대표는 몽고메리 카운티 교육위원회에서 학생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몽고메리 카운티 학군은 미국에서 12번째로 큰 규모라고 하는데요. 3만8000여 표를 받아 선출된 그는 유일한 학생 위원으로서 학생들을 대변하는 한편 약 40억 달러(약 5조6700억 원)의 예산을 감독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학생 위원을 할 당시 세금을 인상하지 않고 교육 관련 예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소통하기 위해 애를 쓰곤 했는데, 예산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수만 명 규모의 큰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그때 배웠어요.”


모텔방 창업, ‘1달러’ 짜리 식사하며 버텨
그가 21세에 창업한 피스컬노트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전 세계 국가의 법과 규제, 판례를 즉시 검색하고 분석하는 법률 전문 소프트웨어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창업 아이템 가운데 이런 서비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과거 정치 활동 경험이 아이디어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컨대 몽고메리 카운티 교육위원회 학생 위원이었을 당시 세금과 교육, 교과과정 등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 고민하면서 법과 제도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두고 혼란스러운 적이 많았다고요.

“미국에서는 연방정부가 제정한 법이 있는가하면, 50개 주가 각각 법을 제정하고, 9만 개 도시에서 각자 법을 통과시키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연방법이 주 법과 일치하지 않거나, 시(市)법과 중첩되는 경우도 있어 어떤 법을 준수해야하는지 고민이 끊이지 않죠. 이거야말로 AI가 해결할 수 있다고 봤어요.”

팀 황 대표(가운데)가 피스컬노트 공동 창업자인 제럴드 야오(Gerald Yao·왼쪽), 조나단 첸(Jonathan Chen·오른쪽)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팀 황 대표 제공

친구 두 명과 함께 한 스타트업의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각자 아르바이트나 인턴십 등을 하며 모은 돈을 합쳤습니다. 각자 2000달러씩 총 6000달러. 그 돈을 들고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갔습니다. 아파트를 구할 형편이 되지 않아 하룻밤에 70달러인 모텔방을 숙소 겸 사무실로 정했고요. 한 방에서 세 명이 함께 생활했는데 침대는 두 개밖에 없어서 한 명은 바닥에서 자야 했습니다.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하루 12~14시간씩 주 7일을 코딩에 매진하면서 고객에게 전화를 돌렸거든요. 방에 계속 있으면 컴퓨터 모니터가 (습기로) 뿌옇게 되곤 해서, 공원으로 나가서 코딩을 했어요. 각자 월급으로 500달러씩 가져갔는데, 버거킹에서 1달러짜리 메뉴를 겨우 사먹을 수 있었어요. 거의 1년간 그렇게 생활했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셈인데, 혹여나 실패가 두렵지는 않았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직장을 다니며 아파트 월세는 부담할 수 있을 정도의 월급을 모은 뒤 창업하는 방법도 있었을 테고요.

“당시 저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회사를 창업했는데 실패한다면, 괜찮습니다. 그냥 또 다른 회사를 창업하면 되니까요. 스물한 살의 청년 앞에는 세상이 열려있고, 리스크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굳이 리스크라고 해봐야 인생에서 2년을 낭비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죠. 저는 당시 경험을 얻기에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팀 황 대표(가운데)가 피스컬노트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기념하고 있다. 팀 황 대표 인스타그램 캡처


피스컬노트는 창업 9년 만인 2022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아시아계 출신 중에서는 최연소입니다. 그는 피스컬노트 성장의 원동력으로 ‘사명’을 꼽았습니다. 직원을 위해 더 나은 조직을 만들고 고객을 위해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요.

“물론 매출, 이익 등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피스컬노트는 제품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잠재력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대개 소수의 부유한 사람만이 고액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며 법률 정보를 얻었다면, 피스컬노트는 같은 정보를 비영리단체나 중소기업, 혹은 정보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소수자 중의 소수자가 차별에 대처하는 법
황 대표는 때로 차별적인 시선도 깨나가야 했습니다. 미국 전체 인구의 약 5%가 아시아계고, 그중에서도 한국계 미국인은 1%도 안 된다고 하는데요. 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 가운데서도 소수자(the minority of the minority of the minority)’라고요.

차별은 대개 소수자를 향한 고정관념에서 비롯됐습니다. 피스컬노트를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에도 그랬습니다. 50, 60대의 로펌 파트너들은 피스컬노트 사무실을 찾아와서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던 황 대표에게 “CEO는 어디 있나요? 왜 여기에 없죠?”라고 물었던 것이었는데요. 마치 황 대표를 인턴쯤으로 여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요.

“사업을 할 때 아시아계 미국인은 공학에서는 매우 뛰어나지만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대중 연설, 경영 등에서는 서툴다는 고정관념도 있고요. 종종 컨퍼런스나 대규모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 사람들이 저에게 다가와서 ‘팀, 영어를 정말 잘하네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학에 다녔거든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 외모나 말투 등에 대해 언급하는 등 저를 다르게 바라보거나 다른 기대를 가지곤 합니다.”

사람들의 편견에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일은 꽤 자주 일어나고, 궁극적으로는 그냥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어떤 사회에서든 소수자가 겪게 되는 일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결국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걸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하는데요. 제가 사회에 어떤 독특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극복했어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국인 창업가 멘토링하는 이유
황 대표는 피스컬노트를 넘어 여전히 스타트업 업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니트라(Nitra) △앰버(Amber) △제리코 시큐리티(Jericho Security) 등 세 개의 스타트업을 추가로 창업했는데요. 각각 의사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 전기차 전문 보험 및 수리 서비스, 생성 AI를 이용한 피싱 공격을 막는 사이버 보안 기술 등을 제공합니다.

한국 스타트업 업계와의 인연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는데요. 니트라의 경우 두나무앤파트너스 등 한국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요. 바쁜 일정 속에서 한국인 창업자들에게 멘토링도 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창업가들에게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어요. 또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을 수 있는 강력한 스타트업 시장이자 기술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영국, 이스라엘, 일본 등 어떤 시장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세대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존재하고, 상장하거나 회사를 매각한 경험이 있는 창업자들이 많은 몇 안 되는 시장 중 하나이기도 하죠. 글로벌 시장과의 접근성도 높고요. 한국에는 이런 장점을 누릴 큰 기회가 있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때문에 한국인 창업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들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는 그에게, 문득 한 가지 의견을 묻고 싶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으로 인해 혹시 한국인 창업가가 미국에서 창업하는 데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요?

자국 중심주의적인 트렌드는 미국만의 상황은 아니지만, 미국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미국의 문법에 맞게 체질을 바꿀 필요는 있다는 것이 황 대표의 생각입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 멕시코, 일본, 중국 등 세계가 점점 더 자국 중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 뿐입니다.”

“미국 사회는 자국 노동자와 경제를 뒷받침하는 비즈니스를 원하고 있죠.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미국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미국의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할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시스템이란 세제 혜택, 규제,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면 반드시 미국 시장에 있어야 하고, 미국 외부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미국으로 가져오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 시장에 몸담고 그곳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 나라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팀 황 대표는 일주일에 120시간 가량 일한다. 쉬는 시간마저도 산업 관련 보고서를 읽는데 쓴다. 그는 “생일이나 가족 행사 등을 많이 놓쳤을 때 창업을 후회한 적이 있긴 하지만, 회사를 설립하는 일이 나에겐 정말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창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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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