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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당대 목소리로 듣는 대한제국 탄생과 끝

입력 | 2024-12-07 03:00:00

정치인 윤치호-프랑스인 뮈텔 등
직접 쓴 기록 바탕해 역사 재구성
당시 다채로운 인식 엿볼 수 있어
◇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김태웅 지음/928쪽·4만4000원·휴머니스트




“폐하께서 현재 전심전력하는 계획이 두 가지 있다고 들었다. 하나는 황제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 있는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것이다. 폐하 주변에는 이런 헛된 계획을 부추기는 지옥의 사냥개 무리가 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수립하고 황제가 되려고 하자 윤치호는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이어 제국 수립 하루 전, 신축된 환구단에서 고종이 제사를 올리는 광경을 본 그의 생각이다. “진지함이나 아름다움,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렬을 보니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전 세계 역사상 이보다 수치스러운 황제의 칭호가 있을까?’”

그런가 하면 궁내부 주사였던 정교는 제국 수립에 앞장섰으며 황제 즉위를 지지한다. 고종이 자주독립의 기틀을 세웠고 명분을 바르게 했다는 이유다. 또 역사 속의 다양한 예를 들어 영토가 크고 작은 것은 황제국에 중요한 요건이 아니라는 논리도 펼친다.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을 거쳐 일제 강제 병합이라는 망국의 결말을 맞게 된다. 이 시기를 당대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로 돌아보는 책이다.

책이 인용하는 것은 다섯 인물이 남긴 기록이다. 서구 문물을 앞장서서 수용하고 국내외 인사를 만나며 광범위하게 활동한 정치인 윤치호, 천주교를 포교하러 한반도에 와서 대한제국 권력을 가까이 지켜본 프랑스 신부 귀스타프 뮈텔, 당대 인물을 관찰하며 역사책을 남긴 지식인 정교와 언론인 황현, 그리고 일반 백성의 시각을 전할 상공인 지규식 등이다.

윤치호가 남긴 것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 년에 걸쳐 쓴 ‘윤치호 일기’다. 이 일기는 지식과 명망, 재력을 갖춘 인물의 일상과 속내가 들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풍문들도 남아 있어 한국 근현대 인물과 지성사, 민족운동, 친일파 연구에 필수적인 사료다. 뮈텔은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된 1890년부터 1933년까지 ‘뮈텔주교일기’를 썼다. 여기에는 조선 정계 인물의 활동, 외국 열강의 움직임이 수시로 언급되며 고종이나 관료들과 뮈텔이 나눈 대화도 남아 있다.

정교와 황현은 당대 신문 자료와 공식 기록을 활용한 역사서 ‘대한계년사’와 ‘매천야록’을 남겼다. 앞선 두 인물의 일기와 달리 시차를 두고 과거 사건을 회상하며 다른 기록을 참고해 서술해 갔다는 점이 다르다. 또 정교는 도시형 개화 지식층이며 황현은 농촌형 유학자에 가까워 두 사람의 다른 역사관과 현실 인식도 비교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재일기’를 남긴 지규식은 도자기를 왕실과 관부에 조달하는 평민 출신 공인(貢人)이다. 1891년부터 1911년까지 매일 일기를 남겨 외세 침략과 정국 변동이 심했던 시기 평범한 사람의 고민과 고통이 드러난다.

책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며, 역사적 사건을 이 다섯 명의 목소리를 통해 풀어낸다. 또 주인공들과 관련된 정부의 조치를 ‘승정원일기’ 등을 통해 기술했다. 이를 통해 일제가 편찬한 ‘고종, 순종실록’의 편향성을 벗어나 당대의 역동적인 삶과 다채로운 인식을 조명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