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로 재해석한 프로메테우스… 로맨스의 원형 오르페우스 신화 고대∼현대 예술작품에 영감… 신화 속 인물 8명 집중 분석 인간 근원적 욕망 투영된 모습… 인물 해석 시대별 변천사 담아 ◇세상은 신화로 만들어졌다/리처드 벅스턴 지음·배다인 옮김/304쪽·1만9500원·더퀘스트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 루벤스(1577∼1640)의 유화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려다 제우스에게 들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 프로메테우스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신간은 영국의 저명한 신화학자인 저자가 그리스 신화 속 인물 8명을 골라 집중적으로 다룬다. 프로메테우스, 메데이아,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아마조네스, 오이디푸스, 파리스의 심판,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모두 독특한 캐릭터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신화 속 인물들이다. 저자는 캐릭터 집중 분석을 통해 고대,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까지 신화가 사회·문화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끼쳤는지 짚어본다.
미국 배우 케빈 소보 주연의 TV 드라마 ‘헤라클레스’의 한 장면. 그리스 신화 속 캐릭터들은 그림과 영화, 드라마, 시, 만화 등 현대인들이 즐기는 거의 모든 예술 분야에서 변주되고 있다. 더퀘스트 제공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판단해야 했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이야기는 후대에 보다 심오하게 해석된다. 북아프리카 태생으로 추정되는 작가 파비우스 플란시아데스 풀젠티우스는 5세기 후반 저술한 ‘신화론’에서 세 여신의 욕망을 평가했다. 아테나는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명상하는 우아한 욕망을 드러내지만, 헤라는 탐욕스럽게 소유물에 집착하는 삶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욕망으로 가득 찬 쾌락적 삶은 이 중 최하위다. 이 평가에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으나, 신화에 투영되는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신간은 고대인들의 삶에 뿌리내린 신화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여전히 유효한지 알려준다. 풍부한 지식이 녹아 있지만, 현대인들의 관심사와 엮어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점이 매력적. 또 현대뿐 아니라 고대, 중세 등 신화 속 인물들의 변천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한 점도 흥미롭다. 가족, 다름의 개념, 기원, 정치 등 인간의 근원적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풍성히 다뤄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