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로 나라가 뒤숭숭합니다. 과연 이 정치적 혼란이 우리 경제에 어떤 충격을 미칠지에 대한 걱정이 상당한데요. 정치적 불안정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거야 상식이죠. 그런데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까요.
이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태국이죠. 한때 잘 나갔던 태국 경제는 지난 20년 동안 정치적 혼란과 함께 가라앉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붕괴는 아니지만 서서히 침식되어 가고 있죠. 최근엔 ‘아세안의 병자’라는 굴욕적인 수식어까지 붙었는데요. 정치가 발목 잡은 태국 경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2020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에서 시위대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있는 모습. 안타깝지만 정치 혼란은 태국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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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쿠데타가 잦을까요. 강력한 군부가 입헌군주제 왕실과 손잡고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선 선거로 총리를 뽑아놔도 마음에 안 들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내쫓아버리는데요. 이걸 또 국왕이 승인해 주는 겁니다.
아무리 국왕이지만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민주적 절차 따윈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는 게 놀라운데요. 왕실 입장에선 군부 엘리트가 자기네 재산과 권력을 지켜주니 나쁠 것 없죠. 참고로 태국 국왕은 막대한 방콕 부동산과 태국 최대 시멘트 회사, 석유회사 지분을 가진 태국 최고 부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왕입니다.
태국 10대 국왕인 마하 와찌랄롱꼰. 2016년 왕위를 계승한 그는 각종 사생활 관련 잡음과 사치스러운 생활로도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태국은 엄연히 ‘왕실모독죄’가 살아있는 나라이고, 국왕에 대한 비판은 법으로 금지된다. 사진은 12월 3일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와찌랄롱꼰 국왕. AP 뉴시스
태국 정치엔 극단적 분열의 시기가 열립니다. ‘붉은 셔츠’의 친탁신(농촌 빈민)과 ‘노란 셔츠’의 반탁신(도시 중산층)이 거리에서 맞서 싸웠고, 폭력시위는 유혈사태로 이어졌죠. 2011년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총리에 올랐지만,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로 갈등은 끊이지 않습니다. 분열과 혼란은 군부엔 기회였습니다. 2014년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켰고, 태국은 군사정권 체제로 들어갔죠.
2013년 11월 25일 잉락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반정부 시위대의 모습. 친탁신-반탁신 세력의 분열과 극한 갈등은 군부 쿠데타의 명분이 됐다. 동아일보DB
신미래당 당수는 1978년생 타나톤 쯩룽르엉낏. 엘리트 재벌 2세인 타나톤은 ‘군사정부 반대, 민주주의 복원’을 외치며 중도좌파를 표방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신선한 ‘강남 좌파’의 등장이었죠. 후진적 정치에 질렸던 20, 30대 젊은 유권자들의 몰표가 쏟아집니다.
야권 차기 주자로 급부상한 타나톤을 군부가 그냥 놔둘 리 없죠. 2020년 헌법재판소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신미래당 해산을 판결합니다. 타나톤의 정치활동도 10년간 금지하고요. 태국에서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 엘리트는 군부 기득권 편을 들며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곤 합니다. 분노한 젊은이들이 뛰쳐나왔고, 그해 여름과 가을 거대한 민주화 시위 물결이 태국을 휩쓸었죠.
전진당의 대표였던 피타 림짜른닷. 2023년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했지만 총리직을 차지할 만한 연정 의석수 확보에 실패해 집권하지 못했다. 다른 정당들이 ‘왕실모독죄 폐지’ 같은 급진적 공약에 거부감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전진당은 해산됐고, 인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AP 뉴시스
하지만 견원지간 두 파벌의 정략결혼이 순탄할 리 없죠. 또다시 헌법재판소가 움직입니다. 뇌물로 유죄판결 받은 적 있는 인물을 장관으로 임명했다는 이유로 올해 8월 세타를 총리직에서 해임한 겁니다. 본인이 뇌물을 받은 것도 아닌데 해임이라니. 무슨 판결이 이런가 싶은데요. 어쨌든 군부 견제로 그는 잘렸고, 같은 당 패통탄 친나왓이 총리직을 이어받습니다. 탁신의 딸이죠.
그리고 같은 달 헌법재판소는 모두가 예상했던, 하지만 충격적인 또다른 판결도 내놨습니다. 전진당을 해산하고 피타 림짜른닷 대표의 정치활동을 10년간 금지한 거죠. 이렇게 태국 정치는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채 도돌이표에 갇힌 상태입니다.
지난 8월 탁신 전 총리가 새로 총리에 오른 자신의 탈 패통탄 친나왓과 왕실 인준식에 참석하고 있다. 패통탄은 37세로 태국 역대 최연소 총리다. 탁신 전 총리는 재임 시절 농민을 겨냥한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동시에 부패 행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도 크다. 2008년 부패 혐의로 재판받던 중 해외로 도피했지만 2023년 귀국했고, 바로 가석방 조치됐다. AP 뉴시스
그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한동안 태국 경제엔 ‘테플론 태국(Teflon Thailand)’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마치 테플론(코팅) 프라이팬처럼 식었다가도 금세 달궈졌단 뜻이죠. 경제 성장이 약해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재주를 보인 건데요.
2020년 11월 18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서 민주화 시위대가 세 손가락 경례로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AP 뉴시스
또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꽤 유능한 경제 관료들이 중심을 잡아줬습니다. 솜키드 자투스리피탁 전 부총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인데요. 탁신 총리 시절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솜키드는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에 의해 또다시 발탁됐죠. 그는 ‘경제정책의 차르’로 불릴 정도로 태국 경제에 영향력이 컸는데요. 다만 그 역시 군부세력 내 정치싸움에 밀리면서 2020년 사임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광이 태국 경제를 어느 정도 떠받쳐줬죠. 2019년 정점에 관광은 국가 GDP의 11.5%를 차지했는데요. 천혜의 자연과 따뜻한 날씨, 음식과 문화유산은 정치 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적 요인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요? 태국 경제는 한꺼번에 무너지진 않았습니다. 대신 서서히 침식되고 있죠. 이제 곳곳에 녹이 슬고 물이 새기 시작합니다. 정치 혼란이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침식의 흔적이 이젠 너무나 선명해졌습니다.
태국 정부는 이를 두고 아직도 ‘코로나 팬데믹 충격’ 탓을 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코로나 탓만 할 순 없죠. 성장 둔화의 이유는 외국인 직접투자(FDI) 성과만 살펴봐도 찾을 수 있는데요. 지난해 태국은 고작 30억 달러의 순유입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지역의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비해 크게 뒤진 수치였죠. 한마디로 해외 투자자들이 이제 더 이상 태국을 선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태국이 동남아시아 진출을 고려할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국가가 아니게 된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2008년 중국을 대체할 휴대전화 생산 거점으로 베트남을 선택했고요. 현대차, 효성, 포스코 등 한국 대기업도 줄줄이 투자처로 베트남을 택했습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운 데다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게 베트남으로 간 이유인데요. 베트남은 일당 독재국가라서 정치적으로는 안정돼 있다는 게 특히 큰 장점으로 꼽혔습니다. 인건비는 더 비싼데 정치 불안은 큰 태국으로 굳이 갈 이유가 없게 된 거죠.
태국을 밀치고 올라오는 건 베트남만이 아니죠. 요즘 데이터센터 같은 첨단 기술 투자를 가장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동남아 국가는 말레이시아입니다. 또 배터리 관련 제조시설은 니켈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로 향했고요. 단순 조립 위주의 낡은 제조 기술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최신의 미래 기술은 태국까지 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2000년부터 같은 구조로 운영되어 왔고, 그래서 경쟁력이 침식됐습니다. 지역의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외국인 직접투자에서 경쟁할 수가 없어요.”(키아타난타 룬카에우 경제학 박사의 VOA 인터뷰)
오랜 정치적 불안정이 가져온 태국 경제의 쇠퇴를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는 다양합니다. 태국은 한때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라고 불릴 정도로 자동차 제조업에서 존재감이 컸는데요. 통계에 따르면 태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말레이시아에 추월당하고 말았습니다. ‘아세안 2위 자동차 시장’ 지위를 내주고 만 거죠.
11월 28일 태국 논타부리에서 열린 태국 국제 모터 엑스포에 전시된 미쓰비시 자동차. 신화통신 뉴시스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의 처참한 성적표는 나라의 기반마저 흔들린다는 걸 보여줍니다. 지난 10년 동안 태국은 점수와 순위 모두 눈에 띄게 하락했는데요(81개국 중 평균 63위). 시골 학교의 형편없는 교육 여건(=지역 불균형), 국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시대착오적 커리큘럼 탓이란 진단이 나온 지는 오래지만, 점점 나빠지기만 합니다.
“2006년 이후 태국은 기반을 잃었습니다. 태국은 뒤처져 왔고 계속 뒤처지고 있습니다. 진로 수정이 없다면 태국은 꼴찌 국가가 될 것이고, 친절한 사람들과 좋은 가격은 관광에 매력적이겠지만 그 이상은 아닐 겁니다.”(태국 쭐랑롱껀 대학 수석연구원인 티티난 퐁수디락 기고문)
진단은 명확합니다. 이 혼란을 끝내고 과감한 개혁과 민주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국민의 각성도 시작됐죠. 하지만 현실의 태국 정치는 과연 현 정권이 임기는 채울 수 있을지를 여전히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과연 20년의 정치 소용돌이에서 태국 경제는 이제라도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By.딥다이브
가까이서 단기간 들여다보면 정치 혼란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충격이 한방에 몰아서 오는 게 아니라 천천히 스며들기 때문이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기에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태국은 2006년 이후 20년 가까이 정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친탁신-반탁신의 분열과 갈등이 극심했고요. 최근엔 민주화를 요구하는 MZ세대의 분노가 터져 나옵니다. 두차례 쿠데타와 세 번의 헌법 개정, 그리고 연이은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판결이 혼돈을 가중시킵니다.
-그렇다고 경제가 갑자기 무너진 건 아닙니다. 오랜 수출 전진기지로서의 기반은 여전히 유지되는 듯 보이죠. 그런 회복력 덕분에 ‘테팔론 태국’이란 별명도 붙었습니다.
-하지만 경제는 서서히 침식됐고 이제 그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 경제는 펄펄 나는데, 태국 경제만 혼자 기어가고 있죠. ‘아세안의 병자’라는 자조 섞인 분석이 나올 정도인데요. 정치 혼란의 사슬을 끊고 앞으로 나아갈 진짜 회복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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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