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7일 밤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모두 일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안건 상정 도중 표결하지 않고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함께 외치고 있다. 아래쪽은 비어있는 국민의힘 의원석 모습.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민주당은 토요일인 7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지난 4일 탄핵안을 발의해 5일 새벽 본회의에 보고한 지 이틀만입니다. 이 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안을 계속 취재해 온 국회 출입 기자들도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숨 가빴던 4일을 한 번 돌아보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 6당이 4일 공동 발의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이날 새벽 계엄선포가 해제된 지 10시간 만이다. 뉴시스
이때부터 조금씩 의아했습니다. 그럼 민주당은 국민의힘 이탈 표도 확보 안 해놓고 탄핵안을 발의했다는 얘기니까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탄핵 추진 범국민 촛불문화제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5일 오전 민주당 지도부는 회의를 열고 탄핵안 표결 시점을 애초 예상됐던 6일보다 하루 늦은 7일로 정했습니다. 헌법상 탄핵안은 본회의에 보고되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합니다. 최대한 시간 여유를 두고 국민의힘에 대한 설득과 압박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었겠죠.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부터 주말까지 72시간 국회에 비상대기하며 여당에 대한 여론전을 이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중진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친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접촉해 설득하기로 했고요.
이때부터 당 안팎에서도 “탄핵안 발의 전 여당 설득 작업부터 먼저 했어야 했다”는 지적과 함께 “너무 성급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오른쪽)와 추경호 원내대표가 4일 저녁 국회에서 본회의 대통령 탄핵안 보고 관련 논의를 위한 비공개 의원총회에 앞서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가운데 여성) 등 야당 의원들이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하던 중 야당의 감사원장과 검사 탄핵 중단을 촉구하는 국민의힘 의원과 보좌진을 향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뉴스1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아 탄핵안의 국회 통과를 주도했던 우상호 전 의원은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이 좀 빨랐다. 이런 분위기면 통과가 어렵다”고 내다봤습니다. 탄핵안을 발의하기 전에 미리 국민의힘 의원들을 설득해 10표 이상은 확보해 놓고 발의했어야 했다는 거죠. 탄핵안은 무기명으로 표결하기 때문에 구두로 탄핵을 찬성했더라도, 실제 투표장 안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작지 않아 최대한 보수적으로 표를 세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 8년 전 우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당내 반발과 촛불집회 여론 압박 속에서도 탄핵을 신중하게 진행했습니다. 2016년 11월 말부터 대다수 민주당 의원은 “당장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우 전 의원은 “200명 확보가 쉽지 않다”, “탄핵 정족수가 확보되면 내일이라도 발의한다”고 속도조절을 이어갔죠. 당 차원의 ‘탄핵 추진 실무준비단’을 꾸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고, 여당 내 이탈 표를 거듭 재확인하며 돌다리 두드리듯 접근했습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한 민주당 보좌관은 “탄핵안은 한 번에 완벽하게 통과시켜야 한다”며 “정말 치밀하게 표 단속을 거듭했다”고 기억했습니다.
2016년 12월 5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시 당 대표(분홍색 의상)가 당 최고위원회의 시작에 앞서 ‘탄핵D-4일’‘이라고 바꾼 회의실 벽 배경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추 대표 오른쪽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우상호 전 의원. 동아일보 DB
2016년 12월 9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전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7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당론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전 모두 퇴장한 가운데, 안철수 의원만 홀로 앉아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국민의힘에선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안철수 의원만 홀로 남아 끝까지 자리를 지켰죠. 여기에 탄핵안 표결 직전 되돌아온 김예지 의원, 그리고 김상욱 의원까지, 총 3명만 투표했습니다. (김상욱 의원은 탄핵에는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혀 카이저 소제급 ‘반전’이었다는 평이 나왔습니다.)
민주당은 이날 단체로 일어서 이미 나가버린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진작 불렀어야죠. 자신들의 밥그릇만 지키겠다는 국민의힘의 비겁함과 정치적 무책임함과 별개로, 민주당은 그 많은 의석수를 갖고도 전략적으로 완패한 셈입니다. 결국 총 195명만 표결한 탄핵안은 의결 정족수 미달로 개표도 해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폐기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김민석 최고위원이 7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이 선언되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이 역시 결국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전략 실패입니다. 아무리 강대강 대치 상황이라 해도, 벌써 세 번째 올리는 특검법인데 이번엔 여당 내 8명의 찬성은 이끌어 냈어야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타협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이 결국 정치 아니겠습니까.
7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부결되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윤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불법 계엄 사태 이후 수많은 국민이 PTSD 수준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대책도, 전략도 없이 ‘될 때까지’ 매주 탄핵을 반복하겠다는 거야도 국민을 혼란스럽고 지치게 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