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참여하시는 분들을 위해 커피를 미리 선결제해 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비판하는 시민 집회가 전국에서 확산하는 가운데 일부 시민이나 대학생들이 다른 집회 참석자들을 위해 커피나 음식을 미리 선결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엑스)나 인스타그램 등에 ‘어디어디에 선결제를 해놨으니 집회에 오는 분들은 맘놓고 가서 드세요’라고 글을 올리면 이를 보고 가서 이용하는 식이다. 올라온 글은 커피, 김밥, 김치찌개 등 주로 집회의 추위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도심 곳곳의 주말 대규모 집회에서도 충돌이나 안전사고 등은 발생하지 않아 성숙한 시민의식이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의사당 앞 탄핵 촉구 집회 2024.12.7 뉴스1
8일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전공 소속 학생 일부는 집회 시민들을 위해 김밥 100여 줄을 선결제했다고 SNS를 통해 밝혔다. 다른 누리꾼은 선결제 인증 글을 올리면서 “군인이나 경찰도 이용하시고, 부디 시민을 해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여의도의 선결제 매장을 지도로 보기 좋게 정리한 웹사이트도 등장했다.
시민들은 “고맙다”며 감동을 표했다. 7일 집회에 참석한 뒤 선결제 커피와 핫팩을 받았다는 직장인 최지은 씨(28)는 “국민이 서로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사 앞 카페에서 선결제 샌드위치를 받았다는 안모 씨(30)는 “정치인들에게 실망한 마음을 주변 이웃에게서 치유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계엄 사태 이후 첫 주말집회가 열린 7일 국회 앞에는 경찰 추산 10만7000여 명이 몰렸지만 별다른 충돌이나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정부 규탄 구호를 외쳤고,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참가자들은 아이돌 가수를 응원할 때 사용하는 응원봉을 들고 나오는 모습도 보였다. 한때 인파 탓에 서울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에 열차가 무정차 통과하기도 했지만, 경찰에 신고된 충돌이나 안전사고는 없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혹여 위험한 순간이 보이면 서로 “안전하게 시위합시다”라는 구호가 나왔다. 이날 광화문에서는 경찰 추산 1만9000여 명의 보수 진영 시민이 모여 탄핵 반대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3시 국회 앞에서는 시민단체 촛불행동 주체로 경찰 비공식 추산 1만3000여 명이 참석한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시민들은 ‘윤석열 즉각 체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성명에서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국회 표결을 무산시킨 여당을 비판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전북 군산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윤석열퇴진군산시민행동’은 9일부터 윤 대통령 탄핵이 확실시될 때까지 매일 오후 7시 무기한 집회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이날 정치학자 573명도 윤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