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장기화에 경제정책 흔들 ‘대왕고래 사업’ 예산 깎여 동력 약화 특례법 처리 어려워 주택공급 차질 1기 신도시 정비사업 등 영향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로 정국이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정부가 추진해 왔던 주요 경제정책들 역시 좌초 위기에 몰렸다.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과 상속세 공제 금액을 높이는 상속세 개편안 등은 국회 통과가 이전보다 더욱 불투명해졌다. 정치 공백으로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되면서 관련 법 개정·제정이 필수적인 주택 공급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8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추진하던 반도체 특별법과 상속세 개편안 등은 국회 통과 무산 위기에 놓였다. 탄핵 정국으로 이들 법 개정이 뒷전으로 밀린 데다 여야가 극심하게 대립하면서 야당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기업 근로자들의 경우 주 52시간 근무 적용에서 제외하고 그 대신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가 제출한 상속세 개편안은 자녀 공제 금액을 현재 1인당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상향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밖에 정부의 주요 정책에도 제동이 걸렸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개발 프로젝트인 ‘대왕고래’는 야당이 내년 시추 사업 예산 497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내년 상반기(1∼6월)까지 100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통상 매년 12월에 발표해 왔던 내년 경제정책 방향 역시 발표 시점이 여전히 미지수다. 내수 진작 정책이 담길 예정이었지만 탄핵 정국으로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정부는 특례법 제정을 통해 2029년까지 서울 도심 정비사업 13만 채, 1기 신도시 물량 4만6000채를 조기 착공하겠다고 밝혔다. 특례법 제정이 지연되면서 정비사업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기업형 장기임대 주택을 도입하기 위한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기업형 장기임대 주택은 정부가 올해 8월 전세사기 여파로 위축된 비(非)아파트 공급을 늘리고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내놓은 신유형 임대주택이다. 2035년까지 10만 채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주택 공급 관련 법안 처리뿐만 아니라 정부 지원이 중요한 1기 신도시 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며 “조합원들도 사업 추진에 나서기보다는 움직이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세종=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