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장 3선 도전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고 있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뉴스1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3선, 4선 도전 시도는 오래된 체육계의 상처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정몽규 회장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축구인들을 지난해 3월 기습적으로 사면하면서부터였다. 한국 축구를 뒤흔들고 존폐 위기로까지 몰고갔던 2011년 국내 프로축구(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을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는 다름 아닌 정몽규 자신이었다. 당시 국민들에게 허리 숙여 사과했던 그는 2013년 대한축구협회장이 됐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가 자신이 이끌던 프로축구계에서 일어난 흑역사를 지우고 싶어 관련자들을 사면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축구계에 끼친 이 사건의 무게와 아픔을 진심으로 가슴에 담고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사면 시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사면 시도 자체가 많은 이들의 눈을 의심케 한 또 다른 큰 사건이었다. 결국 그는 거대한 후폭풍과 마주치며 사면 결정을 취소해야 했다.
최근 두 사람은 관리감독기구인 문화체육관광부의 다양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3선, 4선 도전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 진영이 정부의 압박에 맞서 단골 메뉴로 내세우는 것이 ‘체육계의 자율성’이다. 체육계의 자율성은 물론 중요하다. 정부 및 권력의 입맛대로 휘둘려 본 상처를 지닌 한국 체육계가 ‘체육의 도구화’에서 벗어나 그 자체의 발전논리를 갖추어나가려는 시도는 체육계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율성을 보장받으려면 반드시 자체 조직 내의 자정 능력이나 자기 개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자율성이란 한낱 자기 보호 내지는 허울 좋은 자기 방패에 불과하며 그 뒤에 숨은 조직은 부패하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이 ‘짜고 치는 고스톱’ 비판을 받으며 3선 승인을 받은 것이나, 정 회장이 그 숱한 실책에도 불구하고 4선에 나서려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이 단체들 내에서 자정 내지는 자기 개혁을 위한 내부 장치가 망가져 있음을 보여준다.
선수의 극단적 선택 등이 일어났을 때 이 회장을 향한 퇴진 요구 중에는 “회장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이 자리가 갖는 책임의 무거움을 보여 달라”는 것도 있었다. 그래야 후임 회장들도 더 신중하고 개혁적으로 일을 할 것이라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이 회장과 정 회장의 모습은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끌어온 조직을 더 길게 장악하려는 모습일 뿐이다. 이것이 조직의 사유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기흥, 정몽규 두 회장의 임기 중에 벌어졌던 사건들은 우리 체육계에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두 사람의 재도전은 그들을 둘러싼 과거 또는 현재 진행 중인 논란과 상처들의 존속이며 그로 인한 트라우마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인물 교체가 곧 최대의 개혁인 상황이 되고 있다. 체육계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