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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희창]1%대 저성장 위기에 경제 정책은 올스톱

입력 | 2024-12-08 23:15:00

박희창 경제부 차장


지난해에 이어 내년에도 한국 경제는 1%대 성장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1.9%로 전망했고,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8%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모든 수입품에 부과하겠다고 한 10∼20%의 보편 관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하면 성장률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이후 한국 경제가 2%도 안 되는 성장률을 보였던 건 초대형 대외 악재가 발생했던 때를 제외하면 2023년 한 번뿐이었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것이란 위기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지만 정부의 경제 정책은 모두 멈춰 섰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무산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통상적으로 매년 12월에 내놨던 내년 경제정책방향은 언제 발표할지도 알 수 없다. 경제정책방향에는 한 해 동안 정부가 추진할 정책의 큰 틀과 실행 계획이 담기는데, 침체에 빠진 내수를 살릴 방안들이 포함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퇴진을 두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부 내부에서도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 나온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역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미 여야가 합의를 마쳤지만 양측의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국회 통과는 다시 불투명해졌다. 남은 23일 동안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는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야당이 반대했던 반도체 특별법은 국회 통과가 더 힘들어졌다.

정책을 실현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인 예산마저 내년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야당이 지난달 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처리한 감액 예산안이 본회의에서도 그대로 통과되면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심해 석유·가스전)’는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505억5700만 원의 관련 예산 중 8억3700만 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삭감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예고한 추가 삭감까지 이어지면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총알’은 더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해외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다시 한번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주목하고 있다. 책 ‘일본화-일본의 잃어버린 수십 년에서 세계가 배울 수 있는 것’을 집필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윤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옳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지적했다. 그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유로는 상장 기업들의 후진적 지배구조,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꼽혔는데 정치 불확실성까지 더해진 셈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수차례 강조했던 대통령이 정작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견고하게 완성시켰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증시를 넘어 대외 신인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해외 투자자들은 많지 않다. 소비, 기업 활동 위축은 이미 확실시된다. 정치적 혼란이 길어지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계속 쌓여 간다. ‘잃어버린 30년’을 따라갈 가능성만 점점 키울 뿐이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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