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도쿄 특파원
7일 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정규방송을 끊었다. 40분 넘게 한국의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동시통역으로 생중계했다. 며칠째 신문 1면과 방송 뉴스 첫 꼭지는 비상계엄과 탄핵안 소식이다. 일본 언론은 왜 이렇게 크게 보도하는지를 아사히신문 가스가 요시아키(春日芳晃) 편집국장에게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국민들은 종북 반국가 세력과 싸운다는 윤석열 대통령 설명을 납득할 수 있는가? 한국 국민과 마찬가지로 많은 일본 국민들도 이해할 수 없으니,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보도할 수밖에 없다.”
“2차대전 소집영장 받은 느낌”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황당함과 놀라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첨단 정보기술(IT)을 자랑하는 ‘K컬처 나라’ 한국에서 계엄령이라니. 일본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한 60대 교수는 “학창 시절 김대중 납치 사건이 실렸던 신문 1면을 보는 것 같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 베테랑 일본 기자는 “오늘 밤 나라에서 아카가미(赤紙)를 받으면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라고도 말했다. ‘빨간 종이’라는 뜻인 아카가미는 1940년대 태평양 전쟁 때 자국민과 조선인 등을 동원하기 위해 일본 군부가 보낸 강제 징집영장이다. 그만큼 아득하고 황당한, 21세기 선진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유다.
일본 국민과 지식인 사회는 한국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안 논란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흘러가야 하는가. 계엄과 탄핵이 아니면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이런 사태를 겪고도 국가와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내각제인 일본 헌법에는 총리 임기가 명시되지 않았다. ‘임기 3년’은 집권 자민당 당규다. 그나마 시시때때로 바뀐다. 중의원(하원) 임기는 4년이나 의회가 해산되면 만료 전에 종료한다고 돼 있다. 그렇다고 어떤 상황에 어떻게 해산하는지조차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도 않았다. ‘덴노는 다음 국사에 관한 행위를 한다’는 헌법 7조에 ‘중의원 해산’을 둔 정도다. 실질적으로는 총리 전권으로 아무 때나 해산이 가능하다.
규정이 허술하고 불안하지만, 타협과 정치력으로 공백을 메운다. 지지율이 떨어진 총리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으니 언제라도 교체 대상이다. 비판에 귀를 닫거나 미숙한 행보를 보이면 당내 비판 몇 마디에 임기와 상관없이 그만둬야 한다. 그러니 매사가 조심스럽다. 기대에 못 미치면 몇 개월 만에라도 하차하고, 잘하는 총리는 당규를 바꿔서라도 연임을 시킨다. 장관 자리 한 달이면 밑천이 드러나니 실력이 없으면 당내 간부직조차 맡기 어렵다. 그렇게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30년 이상 정치적 훈련을 받아야 총리 후보로 거명된다.
나라 두 동강 낸 대통령제 폐해
한국은 어떠한가.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불법성 짙은 계엄 사태를 저질러도 직무 정지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할 만큼 경직됐다. 국회가 폭주해도 해산은커녕 어떤 견제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고작 거론되는 ‘여당 대표-국무총리 공동 국정운영’에 선뜻 동의하는 국민은 드물다. ‘주권자인 국민이 내 손으로 뽑는다’는 정당성 말고는 오만과 독선, 극단적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게 드러났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라를 두 동강 내는 극단적 대통령제 폐해가 지금의 한국보다 더 적나라한 나라가 있을까.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