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표결 무산 후폭풍] 서방-외신, 탄핵무산 비판 목소리 美국무부 “韓 민주적 절차 작동 촉구”… 빅터 차 “美, 尹에 대한 입장 밝혀야” NYT “국민적 분노가 여권 덮칠수도”… 아사히 “대통령 퇴진론 더 거세질 것”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탄핵 무산) 합의는 국민적 분노가 여당과 정부 전체로 확대할 위험이 있는 도박이다.”(미국 뉴욕타임스·NYT)
12·3 비상계엄 사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한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해왔던 미국 등 서방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무산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공통적으로 탄핵을 둘러싸고 여야 갈등이 거세지면서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고 정치사회적 혼란이 더 극심해질 것이란 전망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국가보다 당파적 이익을 우선시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란 강도 높은 표현까지 써가며 한국의 대혼란 가능성을 우려했다.
● “국민 지지 받는 대통령이 미국에도 이익”
이어 국무부는 또 “한국의 관련 당사자들과도 계속 접촉할 것”이라며 “한국 국민들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권리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로 모든 상황에서 존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신은 국회의 탄핵 표결을 보이콧한 여당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탄핵 무산은 여당에 ‘피로스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피로스의 승리는 심각한 대가를 치르며 패배나 다름없는 승리를 일컫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여당 의원들은 야당이 정권을 잡는 것을 더 우려하는 듯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지지를 위해 결집했다”며 “탄핵 무산은 더 큰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고 대통령 사임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한국의 혼란 악화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윤 대통령의 분노와 좌절이 2차 계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미국은 윤 대통령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도 6일 한미경제연구소 행사에서 “국민의 지지와 정당성을 가진 지도자가 한국에 있는 것이 미국에도 이익”이라며 “미국은 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래드 셔먼 연방하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같은 날 하원 본회의에서 “계엄 선포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자 세계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한 노력에 대한 모욕”이라고 규탄했다.
일본 언론은 탄핵 무산은 물론이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국민담화문까지 실시간 속보로 전하며 향후 여파에 주목했다.
아사히신문은 “윤 대통령의 사실상 직무 배제가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며 “탄핵 무산으로 현 정권은 (한시적으로) 존속하게 됐지만 대통령 퇴진론은 더 거세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사설에서 “혼란 확산을 피하기 어렵다”며 “한국의 내정 혼란이 한일 관계는 물론이고 국제 질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탄핵 무산은) 여당의 ‘시간 벌기’가 목적”이라며 “혼란 장기화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 등에 대한 대응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NHK는 우원식 국회의장을 인용해 “탄핵은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절차”라고 소개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대규모 거리 시위도 탄핵 반대에 나선 여당을 설득하지 못했다”며 “한국은 정치적 불확실성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고 짚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한국 사회의 깊은 균열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했으며,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추운 날씨에 거리에서 기다린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성토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