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표결 무산 후폭풍] 한동훈 수습책 현실화 가능성은 “尹 국정 관여 안할것” 강조하며… ‘탄핵 직무정지와 같은 효과’ 주장 당내, 이재명 사법리스크 겨냥해… “선거법 2, 3심 뒤 퇴진” 목소리 친윤-중진 “韓 독단 안돼” 반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7일 오후 국회에서 차를 타고 나가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윤석열 대통령 조기 퇴진 추진”을 들고나온 건 전날(7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폐기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특히 윤 대통령이 군 통수권과 외교 등을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을 강조하며 ‘조기 퇴진 추진’이 탄핵소추안 가결로 인한 직무 정지 효과와 비슷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하진 않았지만 탄핵과 비슷한 정국 수습을 여당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표가 이날 공개적으로 밝힌 조기 퇴진 로드맵에는 시기와 방법 등의 구체성이 빠져 있다. 적법성 논란에 더해 야당이 책임총리제, 임기 단축 개헌 등을 거부하고 탄핵을 택한 상황에서 한 대표의 수습책이 현실화할지도 미지수다. 여기에 친윤(친윤석열)계와 중진 그룹에서 한 대표 주도로 추진하는 조기 퇴진 로드맵에 대한 공개 반발이 나왔다. 여당 핵심 관계자는 “친윤도 적극 의견을 개진하면 될 일”이라며 “한 대표가 의견을 수렴해 결론을 낼 것”이라고 했다.
여당 내에선 윤 대통령에 대한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가 조기 퇴진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수사를 받아야 한다. 법적 책임을 피하면 안 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서 한 달 내에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기소되고, 재판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궐위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던 한 대표는 조기퇴진으로 선회한 이유에 대해 “탄핵의 경우 실제 가결될지, 가결돼도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등 불확실성이 있는 기간이 상당히 진행된다”며 “그 과정에서 어제 광화문과 국회에서 봤듯이 극심한 진영 혼란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 대표는 공개적으로는 조기 퇴진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밝히지 않았다. 그 대신 조기 퇴진 시기와 방법에 대해 “당내 논의를 거쳐서 구체적인 방안들을 조속히 말씀드릴 것”이라고만 했다. 한 대표는 대국민 담화 뒤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당내 의원들을 불러 모아 수습책 마련을 논의했다. 한 대표는 9일엔 3선 이상 의원들과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일단 친한계도 빠른 조기 퇴진에 공감대가 모였다. 한 친한계 지도부 관계자는 “임기 단축 일정이 제시되면 야당도 탄핵안을 계속해서 올릴 명분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친한계 의원은 “필요하면 야당과도 대화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오갔다”고 했다.
한동훈 지도부가 탄핵소추안 표결에는 불참하고 조기퇴진론을 띄운 것의 이면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놓여 있다. 탄핵소추안이 당장 가결되면 이 대표가 이미 징역(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2심 재판 역시 기약 없이 미뤄질 수 있다.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범 재판 1심은 기소 뒤 6개월 이내,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3개월 이내에 해야 해 원칙상으론 내년 8월 이 대표의 선거법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하지만 정국 상황 때문에 최종심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장 조기 대선 정국을 만들 탄핵소추안 처리 대신 조기퇴진론으로 시간을 벌면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내지 3심 결과가 조기 대선 전 나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한 대표가 조기퇴진을 강조한 이날 친윤계와 중진 의원들은 당내 상의가 먼저라는 목소리를 냈다. 윤 대통령이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한 것은 한 대표 1인이 아닌 의원총회 등으로 의견을 모으라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윤상현 의원은 “대통령이 국정 안정화 방안을 당에 일임한 것은 당 최고위원회, 의원총회, 또 여러 원로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정국 안정에 대한 건 의원총회가 제1 숙의 기구”라고 강조했다.
여당 일각에서 나오는 개헌을 통한 윤 대통령 임기 단축안은 야당의 반대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평가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임기 단축 개헌은 지금 고려할 때가 아니다”라며 “윤 대통령이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자진 사퇴하거나 탄핵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