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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꽃집 대신 아버지 정육점 승계…재래 시장 살리기 나선 청년 상인들

입력 | 2024-12-11 08:00:00

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지만 상인의 고령화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에 중소기업벤처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청년상인의 재래시장 가업승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사진은 올 추석 때 촬영한 광주지역의 한 전통시장 내부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역대 정부는 전통시장 활성화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전통시장이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소중한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인의 고령화가 전통시장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펴낸 보고서 ‘이슈와 논점-전통시장 내 청년 창업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전통시장 상인(17만 4854명) 가운데 60세 이상이 57.6%(10만 715명)로 절반을 넘었다. 10년 전인 2013년(6만 2060명·33.3%)보다 24%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반면 59세 이하 연령층의 상인 수는 같은 기간 12만 4484명에서 7만 4139명으로 크게 줄었다. 허리를 맡고 있는 50대(2013년 39.52%→2022년 26.90%)와 40대(20.31%→11.30%)의 감소율이 특히 컸다.

청년층의 유입도 저조했다. 이 기간 39세 이하 상인의 비율은 6.9%에서 4.2%로 쪼그라들었다. 그 결과 전통시장 상인의 평균 연령은 55.2세에서 60.2세로 높아졌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청년상인 창업 지원 및 가업 승계 지원 사업’(이하 가업 승계 지원)과 ‘도약 지원 사업’, ‘핵점포 발굴’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성과를 올리고 있다.

여기에 전통시장의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청년 상인 3명이 있다. 모두 서울 등 대도시에서 자신의 직업을 갖고 있다가 부모가 운영하던 가업을 물려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 플로리스트 출신 대전역고기 지유정 사장

지유정 대전역고기 대표는 서울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하다 아버지의 정육사업을 물려받았다. 지 대표가 자신이 직접 발골한 고기를 들고 있는 모습.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제공

대전역전시장은 1920년대 개통한 대전역과 함께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오랜 세월 지역주민과 대전을 찾는 여행객에게 사랑 받아온 지역의 상징물이다. 그곳에 위치한 ‘대전역고기’의 지유정 대표(33)는 전통시장의 정취와 현대적인 경영 방식을 결합해 성과를 올리고 있는 청년 상인이다.

그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하다가 2019년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았다. 플로리스트로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감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딸 셋 중 둘째인 그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남다른 책임감이 있었다. “음악을 하는 언니는 장사에는 소질이 전혀 없다는 게 보였어요. 아직 학교에 다니는 나이 어린 막내에게 가게를 맡기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고요.”

가게를 접으려던 부친을 돕던 중 몇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살릴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아버지의 모든 것이 담긴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도 싫었어요.” 여기에 고등학생 때 가게 일을 도우면서 정육점 운영에 필요한 경험을 쌓은 게 도움이 됐다. 웬만한 남성도 어렵다는 발골을 배우는 등 공부도 많이 했다.

그런데 큰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전통적인 식육 판매 방식을 고집하던 아버지를 설득해 현대적인 시스템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못마땅했던 아버지가 3일간 가출하는 일까지 있었을 정도다.

지유정 대표가 온라인 판매용으로 만든 우대갈비는 캠핑시장에서 인기 상품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제공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지 대표의 뜻대로 덩어리째 진열하던 상품에 상표를 붙이고 부위별로 포장해 판매한 것이다. 거래명세서 작성도 손으로 쓰던 방식에서 프로그램 활용 방식으로 교체했다. 이 과정에서 가업 승계 지원 제도를 통해 점포 환경 개선과 홍보·마케팅 관련 비용 등을 지원받았다.
지 대표는 도소매 중심으로 현장 판매하던 경영 방식도 바꿨다. 2020년부터 인터넷 등 온라인 시장에 진출했다. 이때 정부의 도약 지원 사업을 이용해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제품 촬영, 포장 개발 등을 진행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전역고기는 온라인 시장을 통해 우대갈비 같은 인기 캠핑 상품을 선보이며 고객층을 키웠다. 또 급증하는 1인 가구를 겨냥해 한돈 수제 떡갈비 등 간편 조리 식품도 출시했다.

여기에는 인근 유성구에 위치한 로드샵에서 정육가게를 운영하는 남편의 도움이 컸다. “캠핑을 즐기는 남편과 같이 여행을 즐기다가 우대갈비의 인기를 깨닫고 상품화에 나섰어요. 그밖에도 같은 업종을 하다보니 상의하고 도움받는 일이 많습니다.”

지 대표는 앞으로 회사 홈페이지를 통한 상품거래 사이트 운영, 간편 조리 식품 및 밀키트 사업 확대, 음식점 운영 등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청년으로서 전통시장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어르신들과 함께 상생하는 상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행보에 기대가 모아진다.

● ‘제2의 성심당’을 꿈꾸는 샹피니제과점 박종렬 사장

경기 성남시 분당구 돌고래시장에 있는 샹피니 제과점. 이곳은 24시간 저온 숙성을 거쳐 빵을 만들고,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을 고수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제공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돌고래시장은 지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전통시장. 여기에 2000년부터 시장을 지켜온 ‘샹피니제과점’은 맛집으로 잘 알려진 빵집이다.

이곳은 지난해부터 박종렬 대표(35)가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5년차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2018년 그가 가게 운영에 나서게 된 데에는 부친의 건강 문제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일을 많이 하신 탓에 가만히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골반 통증을 호소하셨어요. 게다가 당시에 초기 암 진단을 받으시면서 더 이상 아버지 혼자 가게를 하실 수 없겠더라고요.”

중고등학생 시절 설 추석과 같은 명절, 연말연시 등 수요가 급증할 때마다 가게 일을 거들던 그의 솜씨를 눈여겨보고 가게 일을 물려받으라던 아버지의 권고도 영향을 미쳤다. “대학 진학 때에도 제빵 관련 학과에 진학하길 원하셨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막상 가업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겼다. 그는 빠르게 가게 운영 전반을 현대화하려 했다. 반면 부친은 전통적인 제과점 운영 방식을 고집했다. “20년 이상 쌓인 경험을 앞세우면서, 기본적인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말씀을 앞세워 제빵부터, 제품 포장, 상품 진열까지 예전 방식을 고수하길 원하셨어요.”

박종렬 대표(왼쪽)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건강 문제를 앓던 부친을 대신해 가게를 물려받았다. 사진은 부친 박희용 씨(오른쪽)과 박 대표가 가게 앞에서 찍은 것이다. 박종렬 씨 제공

갈등을 풀어내기 위한 해결 방법은 대화였다. 부친이 쌓은 노하우를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길을 같이 찾아보기로 했다. “오랜 대화를 통해 전통적인 방식에 현대적인 기술과 효율을 결합하되 점진적인 변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했어요.”

이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가업 승계 지원이 도움이 됐다. 자금 지원을 받아 오래된 진열대를 교체했다. 기성품을 사용했던 케이크 장식이나 포장지도 가게 상호가 새겨진 전용 제품을 별도로 제작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제품에 고급 이미지를 심어주고,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로 이어졌다.

가게 운영 전반에 대한 전문가 경영 컨설팅도 빼놓을 수 없다. “교육을 통해 가게 운영 전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어요.”

샹피니제과점은 빵을 24시간 저온 숙성시켜 만들며 방부제를 쓰지 않는다. 당일 생산, 당일 판매가 원칙이다. 현장 판매가 80%를 차지하는 매출 구조도 바꿀 방침이다. 이를 위해 배달 플랫폼과 온라인 판매로 판로를 확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자체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하고, 점포 확장을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 최종적인 꿈은 연 매출 10억 원 이상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는 100년 가게로 만드는 것이다. 또 전국에서 찾는 빵집 명소로 키우는 것이다.

“전통시장은 우리 삶의 터전이자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라며 “젊은 세대로서 전통시장을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박 대표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 대기환경기사로 일했던 시장기름집 정승준 사장

정승준 시장기름집 대표는 ‘우리 손을 거치지 않은 제품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참깨도 직접 재배한다. 정 대표가 자신의 참깨밭에서 판매 중인 참기름을 들고 있는 모습.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제공

경북 문경시에 100년 전통의 문경중앙시장이 있다. 그곳의 ‘시장기름집’은 3대째 이어오는 50년 전통의 가게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할머니가 시작해 아버지를 거쳐 아들인 정승준 대표(33)에게 이어진 곳이다.

정 대표는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뒤 대기환경기사 1급 자격증을 따고 충남 아산에 있는 직원만 300명가량 되는 중견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생활이었지만 2년이 넘어서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성적에 맞춰 대학을 진학했고, 직업도 선택했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취직도 할 수 있었기에 고민 없이 진로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2년쯤 지나면서 이 길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부친이 협심증으로 시술을 받고 투병을 시작했다. “2017년이었습니다. 부친이 혼자서 일하시게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더라고요.”

회사에 명절 선물로 보내진 참기름 수준이 집에서 만든 것보다 떨어진다는 사실도 귀향 결심을 굳히게 했다. “(명절 선물로 시판되는 상품의 수준이) 이 정도면 우리 집에서 만든 참기름이 훨씬 경쟁력이 있겠다. 3대째 50년간 유지해 온 상품이라는 사실만 제대로 알리면 잘 팔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승준 대표(오른쪽)가 경북 문경시 문경중앙시장에 있는 자신의 가게 ‘시장기름집’에서 부모님, 자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정승준 씨 제공

정 대표는 ‘우리 손을 거치지 않은 제품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깨 세척부터 볶는 온도와 시간, 착유 압력까지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최근에는 참깨와 호두도 직접 재배합니다. 하지만 직접 재배한 참깨만으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어 일부는 외국에서 수입하지만 가공 과정은 반드시 직접 합니다.”

정 대표는 전통시장의 틀을 넘어서기 위해 다양한 판매 방식을 도입했다. 매장에서 고객의 요구에 맞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활발히 홍보와 판매를 병행한다.

유튜브 채널 ‘문경지름오빠’를 운영하며 참기름 제작과 활용법, 농사를 짓는 모습 등도 소개한다. 라이브커머스에 직접 출연해 제품을 알리고, 매달 초 고객들에게 단체 문자로 안부를 전하는 식이다.

이런 과정에 도약 지원 사업의 도움이 컸다. 제품 포장부터 제품 홍보 사진 촬영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온라인 매출을 확대했다. 특히 명절 특수를 겨냥한 선물용 상품 패키지 개발지원을 통해 매출도 끌어올렸다.

정 대표는 앞으로 HACCP 인증 공장을 지을 꿈에 부풀어 있다. 문경중앙시장 내 부지도 확보했고, 내년 초에는 공사도 시작할 계획이다.

“전통시장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상품이 특산품으로 자리 잡으면 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문경의 사과나 오미자처럼 시장참기름 제품이 특산품이 돼 문경중앙시장과 함께 전국적으로 뻗어 나가고 싶습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정 대표의 목소리에서 꿈이 무럭무럭 커가고 있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