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불확실성 점점 커지자 안전한 투자처로 속속 자금 이동 5대銀, 9일엔 하루만에 28조↑ 부동산 시장도 관망세 짙어져
자영업자 이모 씨(39)는 이달 4일 보유 중인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돈을 넣었다. 이 씨는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까지 치솟는 걸 보고 주식을 정리하기로 했다”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아 보여,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주는 CMA에 여윳돈을 모두 예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4∼9일 시중은행과 증권사의 대기성 자금이 무려 43조 원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를 잠시 보류하고 자금을 안전한 곳에 묻어두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관망세가 짙어지는 등 정치 리스크가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모양새가 심화되고 있다.
● 은행 요구불예금 나흘 새 40조 원 증가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계좌에 예치된 금액을 뜻하는데, 통상 금융상품에 투자되기 전 대기성 자금으로 여겨진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면서 불확실성이 확산됐고 이에 따라 대기성 자금이 늘어난 것”이라며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증시에서 ‘패닉셀’이 급증한 점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투자자들이 증시에서 돈을 빼 일단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 부동산 시장도 관망세
금융 시장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에서도 투자자들의 관망세가 강해지는 분위기다. 이날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0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726건으로 올해 거래가 가장 많았던 7월(9206건) 대비 59.5% 줄었다. 현재까지 집계된 지난달의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2501건이었다. 집을 산 사람은 매수한 날로부터 한 달 내에 신고하면 돼, 지금 시점에서 11월 한 달의 모든 거래를 집계하긴 어렵지만 10월과 대동소이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수요자들이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정국 혼란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져 12월 거래량도 살아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