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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투자 보류” 계엄이후 대기성 자금 43조 증가

입력 | 2024-12-11 03:00:00

정치적 불확실성 점점 커지자
안전한 투자처로 속속 자금 이동
5대銀, 9일엔 하루만에 28조↑
부동산 시장도 관망세 짙어져




자영업자 이모 씨(39)는 이달 4일 보유 중인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돈을 넣었다. 이 씨는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까지 치솟는 걸 보고 주식을 정리하기로 했다”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아 보여,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주는 CMA에 여윳돈을 모두 예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4∼9일 시중은행과 증권사의 대기성 자금이 무려 43조 원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를 잠시 보류하고 자금을 안전한 곳에 묻어두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관망세가 짙어지는 등 정치 리스크가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모양새가 심화되고 있다.

● 은행 요구불예금 나흘 새 40조 원 증가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9일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640조7159억 원이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대비 40조4544억 원 증가한 수준이다. 9일에는 하루 만에 잔액이 28조306억 원이나 불어나기도 했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계좌에 예치된 금액을 뜻하는데, 통상 금융상품에 투자되기 전 대기성 자금으로 여겨진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면서 불확실성이 확산됐고 이에 따라 대기성 자금이 늘어난 것”이라며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증시에서 ‘패닉셀’이 급증한 점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투자자들이 증시에서 돈을 빼 일단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 이용 고객들의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되는 CMA 잔액도 급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일 기준 CMA 잔액은 86조2109억 원으로 3일 대비 2조3754억 원 불어났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탄핵 불발 등으로 어떤 상황이 생길지 전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안전한 투자처로 여유 자금을 옮겨둔 금융 소비자가 늘어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 부동산 시장도 관망세

금융 시장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에서도 투자자들의 관망세가 강해지는 분위기다. 이날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0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726건으로 올해 거래가 가장 많았던 7월(9206건) 대비 59.5% 줄었다. 현재까지 집계된 지난달의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2501건이었다. 집을 산 사람은 매수한 날로부터 한 달 내에 신고하면 돼, 지금 시점에서 11월 한 달의 모든 거래를 집계하긴 어렵지만 10월과 대동소이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수요자들이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정국 혼란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져 12월 거래량도 살아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이달 첫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에 대한 ‘매매수급지수’는 99.2로 3주 연속 100을 밑돌았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아파트를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다는 의미다.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옛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매수 문의 자체가 뜸한 상황”이라며 “이렇다 보니 재건축 완료 이후 집을 팔려고 했던 사람들은 팔기를 포기하고 다른 가족이 거주하게 하는 등의 대응책을 찾고 있다”고 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