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그가 떠오른 이유는 며칠 전 어머니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미겔(담임 선생님의 이름이다)은 그저 전화로 수다 떠는 친구였어.” 나는 어머니가 내 옛 담임 선생님과 그토록 오랫동안 친근하게 통화하는 사이인 줄 전혀 몰랐다. 어머니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밑도 끝도 없는 모자에서 사소한 왜곡이 섞인 이야기들을 꺼내 내 눈앞에서 흔든다. 수년 전 은퇴하여 경조증(輕躁症)이 있는 할머니가 된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라 어머니의 얘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믿기 어렵다.
열네 살 무렵 사춘기가 찾아와 인간으로서의 전환을 맞이하던 순간, 나는 학교에 가기 전 나를 안아주던 어머니라는 여성이 사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불교의 선승이 제자들에게 현실을 넓게 볼 수 있도록 훈련할 때 사용하는 ‘공안’이 내 마음속에도 심어졌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 부모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바로 이 질문이 나의 공안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작가가 되도록 이끈 질문이자 욕망이었을 것이다. 종이를 태웠을 때 잔해가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을 볼 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왜곡이나 변칙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다른 사람에게는 진부하고 흥미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장면에서 나는 내 어머니의 삶뿐만 아니라 1950년대에 태어나고 자란 중산층 남미 여성의 삶에 어떤 결정체가 형성되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결정체가 허무에 삼켜지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할 수 있다. 퇴근 후 집으로 걸려오던 초등학생 아들 담임과의 전화 통화를 넘어 어머니가 살았던 시간 속에서는 1950년대 보수와 진보 정치인 간 다툼으로 살해당한 내 외조부의 이야기와 1980년대 후반 공무원으로 일하던 어머니의 사무실 타자기로 날아 들어온 자동차 폭탄의 잔해 이야기, 1990년대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일하러 떠나야 했던 긴급 상황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나의 일곱 번째 책 ‘글로리아’는 내 어머니 글로리아의 하루라는 단순한 문학적 모티프에서 출발했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다른 날이 18시간 속에 부호화된 책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속에서 음악을 찾았다. 이탈리아 비평가 피에트로 치타티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산문 ‘나비의 죽음(The death of a butterfly)’을 두고 했던 말처럼.
“대부분 사람에게 대부분의 것은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지지만, 피츠제럴드에겐 음악으로 남았다. 작가에게 핵심은 잃어버린 것 자체를 찾기보다 잃어버린 것의 음악을 찾는 것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