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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이번엔 탄핵이 그나마 질서 있는 퇴진이다

입력 | 2024-12-10 23:21:00

탄핵소추 부결시켜야 할 땐 가결시키고
가결시켜야 할 때 부결시킨 못난 의원들
윤석열 즉각 사임하면 탄핵도 별 의미 없지만
지금으로선 탄핵 절차 밟는 게 대의에 맞아



송평인 논설위원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질서 있는 퇴진론’을 비판하는 칼럼을 3번이나 썼다. 당시 탄핵소추에 임박해서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하는 의견이 정치 좀 안다는 사람들로부터 나왔고 그것을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이 건의하자 박 전 대통령이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2선 후퇴’하고 총리가 사실상의 ‘권한 대행’을 하는 식의 질서 있는 퇴진은 쉽지 않다는 게 이번에 입증되고 있다.

내가 당시 질서 있는 퇴진 대신 탄핵 절차를 주장한 것은 탄핵 절차를 밟아서 탄핵소추를 가결하든 부결하든 하는 것이 권력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무성 유승민 권성동 등 60명에 가까운 새누리당 의원들이 차기 총선에서 자리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찬성하는 바람에 결국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탄핵은 형사처벌이 아니다. 탄핵이 되든 안 되든 죄가 있으면 퇴임 후에라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탄핵은 처벌 이전에 공직자를 파면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한 결정이다. 사법적 성격이 없진 않지만 정치적 행위다. 그래서 미국 의원들은 단 한번도 자당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가결될 만큼의 찬성표를 던진 적이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위법 행위가 당시 그리 명확하지도 않았다. 실제로도 K스포츠·미르 재단 기부금은 법원에서 무죄가 났다. 온갖 직권남용 혐의도 대부분 무죄가 났다. 최순실 딸과 관련한 뇌물수수 혐의는 나중에 별건수사로 밝혀진 것으로 탄핵사유에 끼지 못했다. 탄핵 절차를 밟아 탄핵소추 단계에서 막을 수 있었고 막아야 함에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정치가 정상 궤도를 벗어나면서 대통령감이 못 되는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윤 대통령의 어이없는 계엄은 그런 비정상의 산물이다. 그의 계엄 실행은 국민이 동영상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국회 활동의 제약을 시도한 것은 위법 행위로 윤 대통령은 사실상 현행범에 가깝다. 그의 위법 행위는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어 탄핵소추는 부결시키려야 시킬 수 없는 사안인데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 트라우마’를 거론하며 샤워실의 바보처럼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다.

대통령의 2선 후퇴는 군통수권과 거부권 행사 등을 둘러싸고 이미 곳곳에서 헌법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즉각 사임은 질서 있는 퇴진이 되는가. 앞에서 미국 의원들은 자당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가결될 만큼의 찬성표를 던진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닉슨의 경우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위법성이 명확해서 자당 의원들마저 탄핵에 동참할 뜻을 보이자 닉슨은 선수치듯 사임했다. 미국의 경우는 사임이 탄핵을 피하는 질서 있는 퇴진이 된다. 부통령이 있어 직무를 승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이 즉각 사임을 하면 부통령이 없기 때문에 2개월 뒤 대선을 치러야 한다.

우리 헌정질서에서는 대통령의 위법 행위가 제기되면 탄핵 절차를 밟아 가결이든 부결이든 시키는 것이 질서 있는 퇴진 방법이다. 다만 윤 대통령에게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내란과 외환 혐의는 다른 혐의들과 달리 대통령직에 있어도 수사 대상이 된다. 윤 대통령은 수사를 받는 건 물론이고 구속까지 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만 해도 구속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후에 이뤄졌다. 반면 윤 대통령은 현직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이 있다. 수사기관들이 양에서 늑대로 돌변해 경쟁하듯 수사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까지 가시화하고 있다. 대통령이 현직의 신분을 갖고 구속된 사례는 없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구속을 앞두고 사임한다면 탄핵 절차를 밟고 말고는 의미가 없어진다. 2개월 만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가장 무질서한 퇴진이 된다.

지금 가장 분명한 헌법적 사실은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부결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1선 복귀도 2선 후퇴도 어려운 현실은 질서 있는 퇴진이 탄핵 절차를 밟는 길밖에 없음을 가리키고 있다. 한번 부결된 탄핵소추안을 회기만 바꿔 다시 부의하는 것은 남미 국가에서도 보지 못한 해괴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표결에 참여하는 것이 역사적 대의에 동참하는 것이다. 탄핵소추를 거부해도 돌아올 실익이 없다. 아직은 구속도 사임도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탄핵 절차를 밟는 것이 그나마 대의에 부응하면서 대선을 준비할 시간을 버는 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