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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짜는 교묘한 ‘프레임’… 시민 열린 토론땐 영향력 80% 감소[박재혁의 데이터로 보는 세상]

입력 | 2024-12-11 23:03:00

정치인들, 사건 유리하게 해석
시민 생각 조종하려 하는 경향
다양한 관점의 시민 토론 중요
언론이 반영토록 적극 참여를




《프레이밍 덫에 빠지지 않는 법


지난 한 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있어 격동의 시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고, 곧 이은 탄핵 정국은 국민들을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몰아넣었다. 

충격적인 뉴스들을 접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회 운동’, ‘부당한 명령에 직면한 공무원들의 정신 건강’, ‘군사 쿠데타’ 등 다양한 관련 연구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사이 여당 의원들의 집단적 투표 거부로 인해 탄핵안 투표가 무산되었고, 결국 우리 국민이 생각보다 길어질지도 모를 이 민주주의의 겨울을 헤쳐 나가는 데 염두에 두면 좋을 시사점을 제시하는 연구를 소개하기로 했다.》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염두에 두어야 할 첫 번째는 언론을 접하는 자세다. 우리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여론을 전달하도록 언론에 대해 주체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 사태에서 현재까지의 언론은 정치적 견해차를 넘어 한목소리로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며 민주주의 가치 수호를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언론의 자세는 다시 흔들릴 수 있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편향된 보도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언론이 시민의 편에 서서 진실을 보도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역할을 다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에 주목한 연구(연구①)를 먼저 소개한다. 연구진은 국방, 복지, 의료 정책 영역에서 39년간(1980∼2018년)의 언론 보도, 예산 정책, 여론 데이터를 분석해 세 요소가 서로 어떻게 반영되는지 알아보았다. 분석 결과, 언론 보도는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보다는 여론을 반영하는 역할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여론이 보도에 반영되는 시차를 줄이자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이 연구는 국민이 언론과의 관계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언론 역시 여론 형성 및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여 시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둘째, 우리는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즉 ‘프레이밍(framing·틀짓기)’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인들 혹은 정치 엘리트들은 종종 교묘한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시민들의 생각을 조종하려 한다. 예컨대, 대통령의 조속한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여당 지도부는 ‘국가 안정’ ‘질서 유지’와 같은 프레이밍을 제시하며, 자신들이 정권을 승계받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프레이밍 전략은 비판적인 사고를 방해하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적 검토를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프레이밍의 함정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연구(연구②)는 정치인들 혹은 정치 엘리트들의 프레이밍 전략이 시민들의 의견 형성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시민들이 그 영향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시한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특정 사건에 대한 두 가지 프레이밍을 제시하고, 그룹 토론을 통해 프레이밍 효과의 변화를 관찰했다. 실험 결과, 토론이 없던 그룹의 프레이밍에 따른 평균 정책 지지도 차이(0.75)에 비해 동일한 프레이밍을 접한 그룹에서는 토론 후에도 이 차이가 비슷했지만(0.67), 서로 다른 프레이밍을 접한 참가자들이 함께 토론한 그룹에서는 이 차이가 80% 가까이 줄어들었다(0.15). 다시 말해,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접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인들 혹은 정치 엘리트들이 의도하는 프레이밍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의견을 형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는 단순히 정보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정책이나 정치 이슈에 관해 토론하는 능동적인 시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계엄령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또 한번 거대한 전환점에 섰다. 시민들은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놀라운 성숙함을 보여주었고, 언론은 그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언론과 정치인이 제공한 프레이밍 속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수동적인 시민이 아니라 스스로 프레이밍을 만들고, 어젠다를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이를 구현하도록 요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국민의 적극적 참여를 바탕으로, 비상계엄을 통해 국가 위기를 야기한 현 대통령의 탄핵과 이 사건의 다른 주동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연구①: Wlezien, Christopher, and Stuart Soroka. “Media reflect! Policy, the public, and the new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18.3(2024): 1563-1569.

연구②: Druckman, James N., and Kjersten R. Nelson. “Framing and Deliberation: How Citizens’ Conversations Limit Elite Influence.”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47. 4(2003): 729―45.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