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주적으로 자유 짓밟아 ‘가치외교’ 훼손 한미일 협력 차질에 북중러 영향력 키울 듯 혼란 빨리 끝내 대외 위상-협상력 복원해야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한국이 당면한 심각한 도전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는 거의 확실하고, 주한미군 문제도 제기될 것이며, 북한과의 협상 재개 가능성도 상당하다. 중요 관련 당사국들을 배제하고 양자 협상에 집착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트럼프 당선인의 협상 스타일을 고려할 때 북-미 협상 재개 시 한국이 배제될 수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불구하고 10∼20% 관세 부과가 거론되고 있고,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도 없앨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모든 난제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정부 내에 전략팀이 만들어져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짜고 준비를 해 나가야 할 때이다. 한미 대통령 간의 개인적 인간관계도 튼튼히 하여 어려움을 막을 외교적 노력도 기울여야 할 때다. 그런데 계엄 선포로 그 같은 대응은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차기 대선까지 최소한 5, 6개월의 리더십 공백 상태가 생겨 버린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진 야당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서 “가치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라고 비판했다. 이제 한국 외교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균형 외교’로 복귀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어 경제적 압박을 강화해 오면 점차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미 감정이 고조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한국에 대한 스마일 외교를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한국인에 대해 무비자 입국 조치를 시행한 것이 그 사례 중 하나다. 그러한 전략으로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질 한국을 자국 영향권 안으로 더욱 강하게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거기에 한국의 ‘균형 외교’가 호응하게 된다면, 한국 외교의 축은 미국에서 중국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심각하게 대결하고 북한의 안보 위협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펼칠 그러한 외교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하튼 한국 외교가 그러한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열어준 장본인이 윤 대통령이다.
어차피 한 달쯤 후면 물러갈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한미일 3자 협력체제가 잘 유지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정적 바이든의 작품인 한미일 3자 협력 강화를 계승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또한 일본도 강력한 리더십이 부재한 약체 정부이다. 결국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일본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 핵심 인사들을 설득해 3자 협력을 이어 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위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한미일 3자 협력이 약화되면 인태전략, 그리고 인도태평양 4국(한, 일, 호주, 뉴질랜드)과 나토와의 연계 시도도 약화될 수 있다. 그 경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의 권위주의 연대의 영향력은 커지고 동아시아 국제정치는 더욱 험난해질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지금과 같은 리더십 공백으로 인한 혼란 상태를 최소화, 최단기화하는 것이다. 계엄령 실시를 국회와 시민들이 합심해서 막아낸 것을 보고, 서방 언론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칭송하고 있다. 정치권과 국민들이 함께 단합해 정치적 위기를 빨리 극복해 낼수록 약해진 대외적 위상과 협상력도 빨리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기반 위에서 차기 대선까지 관리자 역할을 할 대통령 권한대행이 중심을 잡아 대미협상 준비와 중단된 외교적 소통 재개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차기 한국 외교의 향배는 결국 다가올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 것이냐가 결정할 것이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