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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유재동]尹이 한때 꿈꿨던 정부

입력 | 2024-12-11 23:18:00

유재동 경제부장


오래전에 이 정부 인수위에 참여했던 고위 공직자에게 들은 얘기다. 대선 직후 새 정부도 ‘문민정부’, ‘참여정부’처럼 별칭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서 실제 몇 가지 아이디어가 논의됐다고 한다. 그때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다며 내부에서 공유되는 것 중에 ‘상식(常識)의 정부’가 있었다. 다소 기이했던 건, 그 앞에 ‘미치지 않은’이라는 수식어도 함께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상식과 합리, 예측가능성의 상실

별칭을 다는 건 어찌됐건 없던 일로 결론이 났다. 너무 즉흥적이고 지나가는 농담 같은 말이어서 별로 진지하게 검토됐을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분명한 건 인수위 내에서 이런 표현을 생각해낼 사람은 실제 윤 대통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는 후보 시절 “이번 대선은 상식의 윤석열과 비상식의 이재명 간 싸움”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탈원전, 소주성, 조국 사태 등 전 정권의 국정 실패와 몰염치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특유의 거친 언어로 구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부가 상식적이고 정상적(미치지 않음)이어야 한다는 건 물론 지극히 옳고 당연한 얘기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에선 정권이 국민 기대와 달리 상식 밖의 일을 도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집권세력이 특정 이념에 경도돼 민생 현장을 외면하거나 권력자의 오판을 참모들이 쉽게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로 발생했다. 또 이는 필연적으로 정권 지지율 하락과 경제를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는 자해 행위로 이어졌다. 상식의 가치를 그렇게도 강조했던 윤 대통령의 최근 헛발질은 ‘미친 정권’의 극적인 사례이자 너무 황당한 자기모순이라 아직까지도 사실로 믿어지지 않는다.

기업인이나 투자자를 만나 보면 이들은 의외로 정부에 그다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돈이 저절로 쏟아지는 요술방망이를 안겨 달라거나 역사에 길이 남을 노벨상급 경제 정책을 펴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규제·행정 당국으로서 최소한의 상식과 합리를 갖추고, 의사 결정에 필요한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 달라는 것뿐이다. 뒤집어 말하면 극단적인 정책 변화나 정치적 혼란에 따른 불확실성, 세계 어디에도 없는 엉뚱한 규제 같은 것은 경제에 가장 치명적인 요인들이다. 만일 윤 대통령의 처음 바람대로 이 정부가 기본 상식에만 입각해 돌아갔어도 우리 경제는 그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럭저럭 버틸 여력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끔찍한 자폭 행위 몇 번에 우리는 이미 최소한의 자격조차 미달한 정부를 갖게 됐다. 어이없는 계엄의 대가는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을 떠나가고 내수 경기가 나락에 떨어지며 국가 경제가 위험에 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간 공들여 쌓아온 국격과 대외신인도가 한 방에 허물어질 위기다.

결국 경제를 극한 위험에 빠뜨려

윤 대통령이 꿈꿨던 이상적인 정부가 실패로 돌아간 가장 근본 원인은 정부의 발목을 잡는 거대 야당도, 지지율을 바닥에 내리꽂은 여사 문제도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자기주장만 상식으로 여기고 이에 반대하는 의견들은 비상식으로 매도한 것, 그리고 설득과 인내, 타협이라는 국정 운영의 기본을 망각한 비민주적 태도가 문제의 본질이었다. 여러 증언을 종합해보면 윤 대통령은 대체로 경청보다는 독선, 토론보다는 윽박지름으로 행정부를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합리적인 의견 개진이 불가능한 경직된 관료 조직, 잦은 정책 실패와 이해할 수 없는 인사로 귀결됐다. 45년 만의 계엄이라는 희대의 자책골은 어느 한겨울 밤의 정신 나감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차곡차곡 빌드업된 결과물일 수 있다.



유재동 경제부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