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博, 1975~76년 출토품 재정리 신라 멸망 후에도 용왕 제사 지낸 듯 제사 주재자 의미 ‘졔쥬’ 한글도 확인
통일신라시대 궁궐 유적인 동궁과 월지 전경.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월지 프로젝트’를 통해 묵서가 쓰인 조선시대 백자편 등 다양한 유물을 재발견하고 있다. 국가유산포털
유약이 발리지 않은 백자 조각의 바닥 부분에 ‘용왕(龍王)’이라는 한자가 쓰여 있다. 주술을 거는 듯한 구불거리는 글씨체가 독특하다. 이 자기 편은 1975∼1976년 경북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뒤 약 50년간 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었다. 통일신라의 왕궁 유적인 동궁과 월지에서 금속과 목간 등 귀한 신라 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부서진 조선백자 조각들은 주목받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국립경주박물관이 지난해 수장고 속 동궁과 월지 관련 유물 전량을 재조사하는 ‘월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립경주박물관은 9일 언론공개회를 열고 “동궁과 월지 유물을 재조사하면서 발견한 조선 시대 백자 조각 8000여 점 가운데 용왕 등의 묵서(墨書·먹으로 쓴 글씨)가 적힌 조각 130여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백자 편 130여 점은 대부분 조선 전기인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자로 ‘용왕(龍王)’ 글자가 쓰인 백자 조각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백자 바닥에 쓰인 용왕(龍王) 글자가 보인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한글로 ‘졔쥬’라고 쓰인 백자 조각도 발견됐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자문을 받아 유물을 직접 조사한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졔쥬라는 글자가 적힌 토기를 월지 인근에서 찍어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기우제와 같은 일종의 용왕제가 계속해서 변형돼 이뤄졌음을 의미한다”며 “자기 조각들은 우리 문화가 오랜 생명력을 갖고 이어져 내려왔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라고 말했다.
‘의일사지(義壹舍知)’가 새겨진 금동판.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X선으로 촬영한 금동판. 의일사지(義壹舍知) 한자가 보다 선명하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의일사지 명문은 원래 원로 미술사학자인 고 황수영 박사의 책 ‘한국금석유문’(1978년)에 ‘의일금지(義壹金知)’로 보고됐으나, 이번에 기존 월지관에 전시하던 금동판을 X선 촬영하면서 의일사지임이 새롭게 드러났다. 황 박사의 책에 명문의 존재가 언급된 후 여러 사람들이 박물관 측에 소재 확인을 요청했으나 파악이 되지 않았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유물까지 재조사하면서 실물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월지 프로젝트 성과를 내년에 재개관할 박물관 내 월지관 전시에 반영할 계획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