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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 유니버스’는 MCU가 될 수 있을까…드라마 ‘조명가게’-원작 웹툰 비교[선넘는 콘텐츠]

입력 | 2024-12-12 17:00:00


드라마 ‘조명가게’ 속 형사. 디즈니플러스 제공

“밤이 끝나지 않아요. 이곳은 어디입니까.”

어두운 밤 골목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작은 조명가게 안. ‘형사’(배성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조명가게 주인’(주지훈)에게 묻는다. 형사는 매일 범죄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어두컴컴한 밤이 끝나지 않는 것. 더군다나 조명가게 주인이 막 타준 커피에선 뜨거움이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형사가 갇힌 곳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다. 형사가 모종의 사건을 겪은 뒤 산 자와 망자가 교차하는 경계에 온 것이다. 형사는 절규하듯 조명가게 주인에게 말한다. “이곳을 헤매다가 내 몸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상한 건지 이곳이 이상한 것인지 알아야겠습니다.”

‘강풀 유니버스’ 속 형사. 카카오웹툰 제공


● ‘주연’으로 격상한 형사 캐릭터

이달 4일 공개를 시작한 뒤 디즈니플러스 TV쇼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 ‘조명가게’는 형사의 역할이 커진 것이 특징이다. 웹툰에서 조연에 불과했던 형사가 드라마에선 주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강풀 작가가 2011년 연재한 동명의 웹툰에서 형사는 조명가게에 들어와 망가진 전구를 입수하는 역할만 하는 단역에 불과하다. 마지막회에 등장해 10여 컷만 등장하는 짧은 역할만 한 것. 더군다나 형사의 얼굴이 나오는 장면은 단 2컷에 불과할 정도다.

반면 강 작가가 각색을 맡은 드라마에서 형사는 노인 사망 사건을 조사하다 연쇄 살인범을 쫓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갇힌 인물들을 만나며 비밀을 적극적으로 풀어간다. 주연으로 격상한 셈이다. 또 드라마 3화는 아예 ‘형사’라는 부제를 달며 형사가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과 자신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녹였다.


다양한 인물 서사가 가득한 드라마 ‘조명가게’. 디즈니플러스 제공


● MCU처럼 ‘강풀 유니버스’

특히 형사는 강 작가의 다른 웹툰인 ‘타이밍’, ‘어게인’ 등 여러 작품에 등장한 적 있는 인물이다. 다른 웹툰에 담긴 형사의 이야기를 끌어와 서사를 이끄는 주요 인물로 각색한 것이다. 또 드라마에서 연쇄 살인범으로 의심받는 ‘중국 음식점 주인’(김대명)도 강 작가의 다른 웹툰인 ‘아파트’에 등장한 인물일 정도로 강 작가는 드라마에 자신의 다른 웹툰을 활용했다.

이처럼 강 작가가 다양한 인물의 서사를 쉽게 확장하는 건 ‘강풀 유니버스’ 덕이다. 강풀 유니버스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시간을 되감거나 멈출 수 있는 시간 능력자들과 괴력, 회복력, 비행 능력을 갖춘 신체 능력자들이 만나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CU 제공

웹툰 초창기부터 활동하며 수십 편의 작품을 쌓아온 자신의 지식재산권(IP)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미국 마블 스튜디오가 프랜차이즈 세계관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구축해 여러 작품과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과 유사하다. 강 작가는 지난해 11월 ‘2023 웹툰 잡 페스타 토크콘서트’에서 “강풀 유니버스의 발전은 그 (웹툰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강 작가의 전작이자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무빙’과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강 작가는 “질문을 해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다만 ‘조명가게’의 시대적 배경이 2018년이고 ‘무빙의 시대적 배경도 2018년이라는 점만 말하겠다”고 했다.

웹툰 속 조명가게 주인은 맨 눈이다. 카카오웹툰 제공


● 인물 사연 입체적으로 강화

조명가게 주인의 외양과 역할도 변했다. 조명가게 주인은 웹툰에서 맨눈으로 등장하지만, 드라마에선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특히 드라마에서 조명가게 주인이 선글라스를 벗을 때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이들이 도망가곤 한다. 눈이 지닌 모종의 능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영웅 역할을 하는 셈이다. 총 8화 중 아직 6화까지만 공개됐지만 저승사자의 역할을 조명가게 주인이 할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드라마 속 조명가게 주인은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인물들의 전사(前事)가 자세히 담긴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면 형사가 범죄자를 쫓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그 사이 형사의 아내가 유산한 뒤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비추며 형사에게 늘 떠난 자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형사의 아내가 유산 후 “모자도 떠 놓고 신발도 떠 놓고 이름도 짓고 태명도 있었는데…”라며 절규하고, 형사가 끊임없이 “미안해”라고 사과하는 장면은 절절함을 더한다.

강 작가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 지난해 8월 공개 뒤 화제를 모은 드라마 ‘무빙’처럼 화려한 액션은 없다. 하지만 강 작가가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기자간담회에서 “웹툰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를 (드라마로) 풀어낼 수 있게 됐다”고 했듯 섬세한 감정 묘사가 더해진 것이 신작의 매력. 연말에 어울리는 ‘서늘하지만 따뜻한’ 작품이다.


드라마 ‘조명가게’ 포스터. 디즈니플러스 제공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