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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직전 카페를 연매출 700억으로 바꾼 이 사람 [BreakFirst]

입력 | 2024-12-15 07:00:00



브랜딩과 마케팅.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개념을 이렇게들 설명합니다. 상품의 첫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마케팅(marketing)이라면 재구매를 하게 만드는 건 브랜딩(branding)이라고요.

14년 차 브랜드 마케터이자 ‘브랜딩의 신’이라 불리는 허준 준앤굿 대표는 “상품이 팔리는 것은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일 뿐, 브랜딩은 브랜드만의 목표와 행복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연봉 1850만 원 홍보대행사 말단 직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8년 만에 노티드, 다운타우너, 리틀넥으로 유명한 F&B(식음료) 기업 GFFG의 CMO(최고마케팅책임자)로 스카우트됩니다. 이후엔 연 매출 300억 원 규모의 공간 기획 브랜딩 기업 ‘글로우 서울’에서도 CMO를 지냈고요. 최근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딩 컨설팅 회사 준앤굿을 설립했습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GFFG의 브랜드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디저트 카페 ‘노티드’입니다. 입사 당시만 해도 ‘없어질 브랜드’였던 노티드를 지금의 ‘국민 도넛’으로 만들었는데요. 그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GFFG는 연 매출 30억 원 수준이었지만 4년 만에 20배 이상 성장해 연 매출 700억 원대의 기업이 됐습니다.

폐업 위기의 디저트 카페가 ‘줄 서서 사 먹는 맛집’이 되기까지. 그가 시도했던 브랜딩 전략 하나하나는 기존의 당연했던 관성을 깨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브랜딩은 단순한 전략과 기술이 아닌 꾸준한 진심과 노력”이라고 말하는 그를 〈브렉퍼스트〉가 만났습니다. 망하기 직전의 브랜드 매출을 700억 원대로 성장시킨 그의 인사이트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연봉 1850만 원의 패션업계 홍보대행사 말단 직원으로 시작한 그는 8년 만에 F&B기업 GFFG의 CMO(최고마케팅책임자) 제의를 받았다. 그는 “열정페이 수준의 박봉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성과를 냈으며 연봉은 매년 20% 넘게 인상됐다. 열심히 하는 만큼 급여가 오르니 성취감을 느꼈고, 그게 나에게 큰 도움이 됐다”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그냥 나가는 손님도 손님이다
패션업계 마케터였던 30대 초반의 허 대표가 2018년 마케팅 총괄로 GFFG에 입사했을 당시, 압구정 로데오 근처에 있던 노티드 매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피크 시간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매번 만석이었죠.

하지만 노티드는 곧 없어질 브랜드라고, 직원들은 생각했습니다. 많은 카페가 그렇듯 커피와 케이크를 시켜두곤 2~3시간씩 머무는 손님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카페는 늘 붐볐지만 객단가(고객 1명당 평균 구매 금액)가 낮았기에 영업 이익이 형편 없었습니다. 당장의 매출은 커녕 브랜드로서의 확장성도 장담할 수 없었죠. 심지어 GFFG 내의 다른 브랜드로 벌어들인 돈을 빌려 써야 하는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손님은 많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장들은 고정비를 줄입니다. 임대료 혹은 인건비 같은 겁니다. 메뉴를 축소하고 일하는 사람을 줄이며 1층에 있던 매장을 3층이나 지하로 옮기는 식입니다.

하지만 허 대표는 ‘비용 절감’으로 영업 이익을 높이는 방법엔 회의적이었습니다. 브랜딩을 통해 기존의 노티드라는 브랜드를 새롭게 탈바꿈할 방법을 찾기로 합니다.

그에게 ‘커리어 하이’(career high)를 경험하게 한 GFFG에서 일하는 모습. 허준 제공

그런 그의 눈에 띈 건 손님이었습니다. 카페에 앉아있는 손님들이 아닌 커피를 마시러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어서 그냥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빈손’에 주목합니다.

“카페는 늘 만석이었기 때문에 들어와서 자리를 둘러보시고 나가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냥 나가는 손님들의 빈손에 우리의 상품을 쥐여주면 어떨지 생각했죠. 논의 끝에 테이크아웃으로 사 갈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추로스, 베이글, 양갱 등 다양한 테이크아웃 메뉴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그중에서 도넛이 선택됐어요. 던킨도넛이나 크리스피크림도넛처럼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 갈 수 있는 메뉴라고 생각했거든요. ”


도넛 아닌 행복을 팔자
망해가는 디저트 카페를 구원하기 위해 전 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테이크아웃 메뉴인 도넛을 개발했습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이었을까요. 열심히 개발한 도넛을 ‘어떻게 팔 것인가’였습니다. 마케팅 총괄인 그에게 모든 직원의 기대와 시선이 쏠렸습니다.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었으니 어디 한 번 실력 발휘를 해 보라’는 거였죠.


브랜딩은 상품의 정체성을 정하고 일관된 목소리로 꾸준히 알리는 것허 대표는 브랜딩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브랜딩을 할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상품의 정체성을 정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팔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무엇을 팔까’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죠.그가 생각하기에 노티드 도넛은 ‘달콤하고 맛있는 디저트’ 이상이어야 했습니다. 맛을 강점으로 내세운 디저트 상품은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그는 노티드 도넛에 ‘행복’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기로 합니다.

GFFG에서 그와 일했던 마케팅팀 직원들과 허 대표의 모습. 허준 제공

“그간 장사가 잘 안됐으니 (직원들이) 우울했을 거 아니에요. 이젠 우울하지 않게 도넛이 많이 팔리고 사랑도 많이 받아서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직원들뿐만 아니라 도넛을 사는 분들, 드시는 분들 모두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지금의 미소 로고가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공급자가 상품의 정체성을 정한다고 해서 소비자가 그렇게 받아들이란 법은 없습니다. 전형적인 공급자 마인드였죠. 허 대표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이 도넛을 사면 매출이 올라 사장 이하 직원들은 행복하겠지만 소비자도 과연 행복할까? 도넛을 사는 경험이 소비자들에게도 행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떠올린 건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였습니다. 1년 중 가장 추운 날이지만 많은 사람에게 포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각인된 축제의 날입니다.

“전 제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인사이트를 브랜딩 전략으로 제시하지 않아요. 경험을 통해 남들보다 잘 아는 방식이어야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고민했어요. 내가 경험한 행복은 뭐였을까. 그때 떠올랐던 것이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였어요. 크리스마스가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끼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선물 때문이에요. 크리스마스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받으며 행복해지잖아요. 그 생각이 났어요.”


행복→크리스마스→선물
노티드의 브랜드 정체성을 정할 당시 그의 사고회로를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행복은 뭘까? 행복은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엔 왜 행복할까? 선물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아가 도넛의 정체성은 무엇이어야 할까?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행복이다.’

당시 F&B 기업에선 낯설었던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을 도입한 허 대표. 패션 브랜드 ‘무신사’와 콜라보한 노티드 매장에서 노티드 상자를 들고 웃고 있다. 허준 제공



선물이니까, 한 박스 아닌 두 박스
도넛의 정체성을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행복’로 설정한 그는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고안해 냅니다. 홍보 목적으로 SNS 인플루언서와 지인들에게 도넛 6~8개가 담긴 ‘노티드 박스’를 선물하는 겁니다. 여기까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디테일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박스가 아닌 두 박스씩 선물한 겁니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전략은 아니었어요. 매장 직원이 실수로 도넛 한 박스를 받아야 하는 제 지인에게 두 박스를 선물했어요. 근데 그 지인이 자기는 한 박스만 갖고 다른 박스 하나를 자기 친구에게 선물한 거예요. 제가 의도한 건 아니었죠. 그런데 지인에게 도넛을 받은 다른 친구가 너무나 행복해하면서 SNS 게시글을 올린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지인의 친구야말로 ‘진짜 선물’을 받은 기분이겠구나!”

허 대표는 주변 지인과 인플루언서들에게 도넛을 선물하면서 “홍보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마케팅 담당자가 자기가 팔아야 하는 도넛을 선물하게 되면 받는 사람은 순도 100%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홍보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런데 마케팅 담당자가 아닌 ‘진짜 친구’에게 도넛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 대가도, 아무 목적도 없다 보니 사람들은 진짜 선물을 받은 기분을 느꼈고 자발적으로 SNS에 도넛을 홍보하는 겁니다.

‘두 박스 선물’ 전략은 효과 만점이었습니다. 친구의 친구, 지인의 지인이 내는 입소문과 자발적인 SNS 게시글로 노티드 도넛은 점점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허 대표에게 직접 선물 받은 인플루언서들이 아닌, 그들에게 ‘진짜 선물’을 받은 지인과 친구들 덕분에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한 겁니다. 

“도넛 두 박스를 선물하면, 두 박스 중 한 박스는 무조건 SNS에 올라왔어요. 제게 직접 선물을 받은 인플루언서나 지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지인의 지인, 친구의 친구들이 올린 게시글이었어요. 그 사람들 입장에선 아무 대가 없이, 아무 목적 없이 받은 선물이니 진짜 감사하다면서 (자기에게 선물을 준 친구들을) 태그해서 게시글로 올리더라고요. 세 번째 친구 덕분에 노티드가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도넛을 단순한 디저트가 아닌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끼게끔 디자인한 노티드 상자. 허준 제공

예상치 못한 효과는 또 있었습니다. 행복을 느낀 건 선물을 받은 사람뿐만이 아니었죠. 허 대표에게 두 박스를 받아 다른 친구에게 선물한 사람들도 행복을 느꼈습니다. 왜냐고요?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거였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도넛을 주고받는 모두가 행복을 느꼈습니다.

“선물을 받은 사람만 좋아한 게 아니더라고요. 제게 도넛 두 박스를 받아 친구나 지인에게 선물한 인플루언서들도 행복해하더라고요.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는 친구들을 보면서요. 그때부터 ‘노티드 도넛은 선물’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매출이 급격하게 증가했어요. 혼자 다 먹는다고 생각하면 도넛을 한 박스 이상 살 수 없잖아요. 그런데 주변에 선물한다고 생각하면 두 박스, 세 박스도 너끈하거든요.”

그의 예측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선물하기 위해 노티드 박스를 100개씩 주문하는 고객들도 생겼습니다. 없어질 브랜드였던 노티드는 하루 3만 개 이상이 팔리는 ‘줄 서서 사가는 도넛’이 됐죠. 10평짜리 매장의 하루 매출이 1억 원을 넘겼던 적도 있습니다. 달고 맛있는 디저트를 넘어 행복을 주고 받는 선물을 팔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장사는 사업이다
GFFG에서 퇴사한 후에도 그는 공간 기획 브랜딩 기업 ‘글로우 서울’의 CMO로 일하며 젊은 세대에게 ‘힙한 장소’로 널리 알려진 성수동의 태국 레스토랑 ‘살라댕 템플’, 이태원 카페 ‘호우주의보’ 등을 직접 기획했습니다. 그가 손을 대는 브랜드와 공간들이 화제가 되면서 ‘브랜딩의 신’으로 불리게 된 그가 지금은 자기 이름을 딴 브랜딩 컨설팅 기업 ‘준앤굿’을 차렸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짐작한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보건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디테일을 직접 기획하고 결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브랜드에 자문만 하는 역할에 만족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더군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브랜드 마케터’로서 허준의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고요.

“장사를 할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의아해하세요. 보통 장사라고 하면 하찮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면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제 브랜드를 만들 거라고요. 저는 브랜드도, 사업도 모두 장사라고 생각해요. 고깃집을 운영했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그런지 어려서부터 저는 장사는 사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자문 역할로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하면서 실력을 쌓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저만의 장사를,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 겁니다.”

GFFG 퇴사 이후에도 여덟끼니, 글로우서울 등을 거치며 브랜드 마케터로 활약한 허 대표. 그는 현재 브랜드 컨설팅 기업 ‘준앤굿’을 운영한다. 그는 “브랜드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다. 하나의 존재다. 브랜드를 존재라고 가정했을 때, 그 브랜드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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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