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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윤종]김건희 여사-채상병 의혹 수사의 나비효과

입력 | 2024-12-13 23:18:00

김윤종 사회부장


“큰일 났어. 이러다 회사 문 닫겠어.”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검찰 관계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한 말이다. 검찰이 살기 위해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특별수사본부가 6일 구성됐고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구속했다. 검찰 일부 부서에는 새로운 사건 배당을 중지한다는 공지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수사력을 집중해 대통령 수사를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별수사단을 꾸린 경찰도 대통령실, 수도방위사령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윤 대통령 긴급 체포를 시도하겠다”고 선언했다.

‘봐주기 수사’ 비판받아 온 검경의 변신

‘전광석화’와 같은 수사다. 각 기관의 경쟁으로 수사 혼선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계엄 정국의 혼란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신속한 수사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검경의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들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지금의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이 탄핵소추로 사법 행정 기능을 마비시키고 주요 예산을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했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런데 ‘여소야대’라는 4월 총선 결과는 김건희 여사 의혹,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과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미덥지 않은 수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

김 여사가 최재영 씨에게 디올백을 받은 사건은 지난해 12월 고발된 후 올해 5월에야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곧 교체됐고, 김 여사의 첫 대면조사는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검찰은 10월 ‘청탁 대가용 선물이 아니다’라며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했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사건도 2020년 4월 고발된 후 4년 6개월 만에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다. 항소심에서 전주 손모 씨의 방조 혐의가 인정됐지만, 비슷한 역할로 의심받는 김 여사 추가 조사는 없었다. 수사심의위원회도 열리지 않았다.

김 여사 의혹 수사에 대한 비판은 연초부터 계속됐고 여당 지지율 하락과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10월 발표한 ‘22대 총선백서’에서 ‘김건희 여사 등의 이슈가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였지만 대응하지 못해 참패했다’고 자체 분석했다.

성역 없는 권력 수사가 사회 혼란 줄여

공수처와 경찰도 마찬가지다.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직권남용 등 혐의를 받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윤 대통령이 3월 주호주 대사로 임명하자, 공수처는 출국 3일 전 불러 4시간 약식 조사했다. 경찰 역시 수사 11개월 만인 7월 채 상병 관련 수색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직권이 없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이 같은 과정에서 야당은 김건희 채상병 특검법의 국회 통과를 강행했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맞섰다. 야권이 서울중앙지검장 등 탄핵과 내년도 예산안 삭감까지 추진하면서 여야 대립이 극에 달했다. 비상계엄 선포까지의 과정이다.

검경이 김 여사 등의 의혹을 스스로 강조해온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의혹이 신속히 밝혀지고 대통령의 빠른 사과로 이어졌다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 공정한 수사가 인정되면 야당이 특검법, 탄핵소추안 발의를 고집할 명분도 없었다. 현재 수사기관들은 윤 대통령 수사에 조직의 명운을 걸었다고 한다. 쓰러진 권력을 엄중히 수사하는 건 조직이 사는 길과 거리가 있다. 차기 대통령 등 새로 등장할 권력의 비리가 나타났을 때 공정한 잣대로 수사해야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권력만 쳐다보는 수사의 나비효과가 얼마나 큰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은 이번으로 충분하다.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