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풀코스 완주해야 마라토너, 그렇지 않으면 러너래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4-12-14 12:00:00


“마라톤 풀코스는 정말 다른 영역이었죠. 10km와 하프 코스를 완주한 뒤 42.195km 풀코스에 도전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서야 왜 사람들이 ‘러너’와 ‘마라토너’를 구분하는 줄 알게됐죠. 풀코스는 정말 마라톤 정신이 있어야 완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취감도 남다르죠.”

지윤아 씨가 10월 열린 서울레이스 하프 코스에 참가해 질주하고 있다. 지윤아 씨 제공.

지윤아 씨(37)는 2015년 지인의 권유로 10km 단축 마라톤을 완주한 뒤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 단거리 선수로 잠깐 활약했고 평소에도 피트니스를 하는 등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지만 긴 거리를 달릴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59분51초. 1시간 완주를 목표로 준비했고, 그 목표를 달성하자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처음 시작할 땐 그냥 달리는 것 그 자체가 좋았죠. 근데 계속 달리니 거리도 늘리고 기록도 단축하고 싶은 겁니다. 10km 대회에 출전하려고 5~7km를 달리며 훈련했는데 어느 순간 힘이 안 드는 겁니다. 그래서 하프 코스에 도전했고, 하프 코스에 도전하다 보니 풀코스까지 완주하게 됐죠.”

그런데 풀코스 완주는 정말 힘들었다. 풀코스 첫 도전은 2018년 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마라톤대회. 지인이 함께 가지고 해서 훈련도 열심히 하고 갔다. 지 씨는 “훈련하다 너무 무리했는지 오른쪽 다리에 장경인대염증이 왔다. 10km까지만 제대로 달리고 나머지는 절뚝거리면서 완주했다. 중간에 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5시간을 훌쩍 넘었지만 그래도 완주하니 그 성취감은 좋았다”고 했다.

지윤아 씨가 한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달리고 있다. 지윤아 씨 제공.

이후 10km와 하프 코스에 집중하며 몸을 만들어 다시 풀코스 도전에 나서려고 했지만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바람에 대회가 사라져 개인 훈련을 해야 했다. 2022년 말부터 다시 대회가 열리게 돼 본격적으로 풀코스 공략에 나섰다.

2022년 가을 지인들과 함께 단체로 한복을 입고 5시간 초반 대에 완주했다. 지난해 서울마라톤에서 3시간50분10초로 ‘서브포(4시간 이내 기록)’를 달성했고, 올해 사실상 전성기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지 씨는 올 한해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마라톤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동아마라톤 올해의 선수상 여자 20·30대 수상자로 선정됐다. 3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42.195km 풀코스에서 3시간23분51초(여자부 110위)의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고, 9월 공주백제마라톤 풀코스에서는 3시간49분45초(여자부 19위)를 기록했다. 풀코스는 물론 하프 코스(1시간35분5초), 10km(41분53초) 개인 최고기록도 올해 다 작성했다.

10월 9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열린 2024 동아마라톤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지윤아 씨.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동아일보는 ‘풀뿌리 마라톤’ 발전을 위해 2007년 국내 최초로 마라톤대회 마스터스 부문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을 만들었다. 해마다 3월에 열리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 참가하고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공주백제마라톤(9월) 또는 경주국제마라톤(10월)에도 출전한 선수 중 수상자를 정한다. 올해 여자부에서는 홍서린 씨(45)가 40대, 노은희 씨(50)가 50·60대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남자부에서는 최범식(27) 유문진(38) 조우원(46) 김회묵(51) 김형락 씨(61)가 각 연령대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대회 자원봉사자 및 스태프를 위해 신설된 ‘동마크루 특별상’은 목영주 씨(41)가 받았다. 이날 수상자들에겐 동아일보가 내년에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서울, 공주백제, 경주국제) 참가권이 부상으로 수여됐다.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한 명을 선정하는 MVP는 올해는 따로 뽑지 않았다.

지 씨는 러닝크루에서 달리며 실력을 쌓았다. 달리기 초창기 크루고스트에서 뛰었고, 지금은 ‘민식이’라는 애칭의 MNSIX와 1987RRR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2년부터 MNSIX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이듬해 운영진에 참여했고 올해는 크루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MNSIX는 ‘러닝을 추억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함께 달린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추억을 쌓고 있다”고 했다. 매월 두 번째 주 금요일 서울 반포종합운동장에서 민식이 트렉데이인 ‘민트데이’를 운영한다. 인터벌트레이닝, 빌드업, 지속주 등 다양한 훈련을 하고 있다. 넷째주 평일 하루는 정기런이 열리며 서울 곳곳을 달린다.

지윤아 씨가 한 마라톤대회에서 달리고 있다. 지윤아 씨 제공.

1987RRR은 ‘달리는 토끼’라는 뜻으로 1987년 토끼띠들 모임이다. 지 씨는 “1987RRR은 100명이 넘는 동호회다. 서로 마라톤 정보를 공유하고, 격려하며 마라톤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러닝크루 7979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서울 광화문과 반포, 여의도에서 달리는데 여의도팀의 페이스메이커로 초보자들의 달리기를 돕고 있다. 아디다스 러너스(AR)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AR에서 동아마라톤 챔피언 출신 유승엽 코치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대회를 앞두고 크루 회원들과 약 3개월을 집중적으로 훈련합니다. 트랙에서 인터벌 훈련, 도로에서 장거리 훈련 등 체계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훈련합니다. 평소에는 월 200km 정도를 달리는데 대회를 앞두곤 300km 정도를 달리죠. 이렇게 훈련해서 목표로 한 기록이 나오면 정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유승엽 코치(33)는 2015년, 2017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국내 남자부에서 우승했다.

지윤아 씨(왼쪽)가 서울시러닝크루 7979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 지윤아 씨 제공.

지 씨는 올해부터는 기록 단축을 위해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도 시작했다. 그는 “오르막을 달리는 게 약점으로 꼽히는데 산을 달리면 좋아질 것 같아 시작했다. 산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꽃과 나무, 바위, 개울 등 자연경관 속을 달려 그 자체로 즐겁다. 하지만 아직은 달리면서 다치지 않으려 신경을 써야 하는 산보다는 자유롭게 달리는 도로가 더 좋다”고 했다.

달리는 게 왜 좋을까?
“달리는 것 자체와 완주한 뒤 느끼는 성취감이 너무 좋아요. 스트레스를 받고 혼자 달리면 생각도 정리돼 머리가 맑아지죠. 그래서 계속 달려 왔는데 앞으로도 제 삶의 일 부분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

지 씨의 내년 목표는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 10회째를 완주하는 것이다. 올해까지 풀코스를 8회 완주한 그는 내년 초 훈련 삼아 한 대회 풀코스에 출전한 뒤 3월 동아마라톤에 출전할 계획이다. 그리고 10회 완주때 풀코스를 3시간20분 이내에 달리는 것도 목표다. 그 목표를 달성하면 3시간10분 이내에 달리는 ‘싱글’에 도전한다. 달리며 계속 도전하는 삶이 즐겁다.

지윤아 씨가 한강변을 달리고 있다. 지윤아 씨 제공.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