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폐쇄나 거래 정지 가능성에 앞다퉈 매도했을 것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로 비트코인 값이 대폭락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1억3000만 원대였던 비트코인이 8000만 원대로 떨어졌다. 이후 바로 제 가격으로 회복했지만, 어쨌든 순식간에 엄청난 거래가 이뤄지면서 30% 이상 폭락했다. 비상계엄 소식에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 매도에 나섰다는 뜻이다.
다음 날 친구가 내게 물어왔다.
“흔히 비트코인은 안전자산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계엄 같은 비상 상황에도 가격이 오르거나 최소한 제 가격을 유지해야지, 왜 폭락했나.”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국내 암호화폐 시장이 요동쳤다. [GettyImages]
비트코인 폭락은 나도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바이낸스 같은 해외 거래소의 비트코인 가격도 같이 떨어졌다면 그래도 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거래소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트코인은 국제 상품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국제 비트코인 가격은 거의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 비트코인 가격만 폭락했다. 한국 사람만 내다 팔았다.
왜 한국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했을까. 떠오른 원인은 3가지다. 첫째, 한국 사람들은 아직 비트코인이 국제 상품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비상계엄이라는 재난 상황에서 자산 가격이 폭락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비상계엄은 분명 자산시장을 폭락시키는 큰 사건이다.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한밤중에 사건이 일어났기에 주식시장 폭락이 없었을 뿐이다. 만약 주식시장이 열린 낮에 사건이 일어났다면 주식시장도 대폭락했을 것이다. 그리고 밤사이에 계엄 상황이 어느 정도 해결돼 다음 날 주식 대폭락은 없었다. 만약 그 상태로 다음 날을 맞이했다면 주식시장도 대폭락했을 것이 뻔하다.
그런데 이렇게 폭락한 건 한국 자산시장뿐이다. 원유, 커피 등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국제 상품은 폭락하지 않았다. 비트코인도 국제 상품이다. 국제 상품의 가격은 세계적으로 영향이 있는 사건, 아니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등 주요 국가의 동향을 따른다. 한국 내 비상계엄은 한국에는 큰 사건이지만, 세계 비트코인 업계에서 볼 때 그렇게까지 큰 사건은 아니다. 한국 주식시장은 거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하지만, 비트코인은 그런 불확실성에 빠져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비트코인이 국제 상품이라는 점을 마음속 깊이 인지하고 있어야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냥 주식, 부동산, 채권 같은 투자상품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으면 비트코인이 국제 상품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비상계엄 같은 위험 상황에서는 자산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 그러니 비트코인도 대폭락하리라 예상하고 팔아치웠을 것이다. 한국의 주식, 채권, 부동산이 폭폭락해도 비트코인은 그 영향을 받지 않는 국제 상품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을 팔아버린 것 같다.
둘째, 거래 정지 위험이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폐쇄되는 등 거래 정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무조건 팔아야 한다. 이때는 국제 상품이라서 괜찮다는 말도 해당되지 않는다. 거래가 정지되면 그냥 다 날린다. 사실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을 때 자산시장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염려했던 부분 중 하나는 거래 정지 가능성이다. 한국 주식이 거래 정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암호화폐와 해외 주식은 거래가 정지될 수 있다. 거래가 정말 정지된다면 언제 다시 거래가 허용될지 감도 잡을 수 없다. 설마 비트코인, 해외 주식의 거래 정지가 이뤄질까.
한국 정부는 원래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부정적이다. 2017년에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려 했다. 당시 국민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나서는 등 엄청나게 반발했기 때문에 폐쇄하지 않았을 뿐이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고 싶었지만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물러섰다. 다만 비상계엄 하에서는 선거가 무슨 의미가 있나. 국민의 반발이 무슨 소용이 있나. 비상계엄 하에서 정부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은 채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정부 관료들이 국민의 표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한다면 분명 암호화폐 거래소는 폐쇄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주식도 위험하다. 이번 비상계엄 포고령 3항은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로, 국내의 모든 언론은 검열을 받게 된다. 문제는 해외 언론이다. 해외 언론은 계엄사 통제가 불가능하다.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 해외 언론을 막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해외와의 교류를 통제할 수밖에 없다. 모든 독재정권이 해외 정보를 막고, 인터넷 연결이 잘 안 되게 하며, 인적 교류도 제한하는 이유다. 모든 해외 정보를 규제하는데 해외 주식 거래는 허용할까. 주식 거래는 먼저 정보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정보 접근이 불가능한데 해외 주식 거래가 가능할 리 없다. 또 미국은 이런 비민주적 통제 사회에 자기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 설령 한국이 해외 주식 거래를 허용한다고 해도 미국이 제재 조치로서 한국의 미국 주식 거래를 금지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 한국 사람이 보유한 미국 주식은 팔지 못한 채 그냥 장부상으로만 남게 될 뿐이다. 거래 정지 위험이 있다면 가격과 상관없이 무조건 팔아야 한다.
셋째, 현금 보유의 필요성이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완전히 폐쇄되지 않더라도 어쨌든 당분간은 거래 정지가 될 수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난 후 얼마 동안은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정지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그다음 날 주식시장이 열리는지, 학교는 갈 수 있는지 불확실하지 않았나. 며칠, 몇 주일간 그런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고 해서 바로 계엄 치하가 될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 50대 이상은 1987년 6·29 선언을 경험한 세대이고, 그 아래 연령대는 촛불시위를 경험한 세대다. 계엄령 선포에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거리로 나갈 것이고, 그 사태가 얼마나 오래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기간을 버틸 현금이 필요하다.
월급을 받는 사람은 현금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 맞춰 생활할 때는 별도의 현금이 없어도 된다. 특별한 일이 발생한 경우에나 따로 현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입이 정기적이지 않고 일정하지 않은 사업가나 투자자는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따로 현금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나도 한 달에 한 번 주식을 팔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간이라도 매매 정지 조치 등으로 주식을 팔 수 없게 된다면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해진다. 이럴 때는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소용없다. 부동산이나 주식이 많아도 지금 입에 풀칠을 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매달 내야 하는 은행 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가진 재산이 경매에 넘어간다. 현금이 없으면 망하는 건 한순간이다.
현금화 위해 미국 주식 매도
실제 나도 현금이 필요하다는 긴박감 때문에 12월 3일 밤 미국 주식을 팔았다. 주식 자체는 아직 팔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비상계엄 사태에서는 현금이 필요할 수 있기에 팔았다. 그래도 미국 주식이라서 폭락한 가격에 팔지는 않았다. 비트코인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폭락한 가격에라도 무조건 팔았을 것이다. 사업가나 투자자에게 이건 손해를 얼마나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남을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지금 엄청난 손해를 보더라도 현금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일단 팔아야 한다.
12월 3일 밤 비트코인 폭락은 이 세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비상계엄으로 자산 가격이 폭락할 테니 비트코인도 폭락할 것이라는 두려움, 한국에서 암호화폐 거래가 정지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불확실한 상황을 맞아 현금을 미리 준비해두려는 생각. 안전자산이라 해도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폭락할 수 있고, 또 지나치게 폭락한 가격인 것을 알아도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12월 3일 저녁에 일찍 잠들고 4일 아침에 깬 사람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투자는 어렵다. 탄탄대로가 아니라, 지금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산골짜기 오솔길이다. 계속 나오는 산속 갈림길에서 그때그때 어디로 갈지를 정해야 하는 미지의 길이다. 폭락한 가격에 비트코인을 팔아야 했던 불운한 사람에게 다른 행운이 오기를 기원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9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