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리처드 그리넬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특별임무대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부터)이 올 9월 27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대화하며 걷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독일 미국 대사 시절 주독미군 감축 등을 주도한 ‘미국 우선주의’ 성향의 그레넬을 북한, 베네수엘라 등을 담당할 특임 대사로 14일 발탁했다. [뉴욕=AP 뉴시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 등으로 북한 문제가 트럼프 2기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과 달리 “북미 대화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리넬 지명자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메시지를 주요국 정상에게 전달하는 등 트럼프 2기 ‘섀도캐비닛(예비 내각)’의 핵심 인사로 꼽혔다. 다만 그가 트럼프 당선인과 마찬가지로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동맹 압박의 첨병 역할을 해온 터라 ‘북미 직접 대화’에 따른 한국의 패싱 우려 또한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넬 지명자는 이날 X에 “트럼프 당선인과 미국인을 대표해 일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영광”이라며 “트럼프는 미국을 안전하고 번영시키는 ‘문제 해결사’”라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할 일이 정말 많다. 일하러 갑시다(Let’s get to work)”라고 썼다.
1966년 미시간주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미트 롬니 전 공화당 대선후보 등의 참모로 일했다. 2001~2008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당시 주유엔 미국대사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외교 경력을 쌓았다.
당시 북한은 한미일과 북중러가 참여한 ‘6자 회담’에서 핵 폐기를 약속했다. 그러나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2008년 영변 핵시설 복구로 6자 회담은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그리넬 지명자는 대북 제재의 강화를 줄곧 외쳤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는 주독일 미국 대사를 지냈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미온적인 독일을 압박하기 위해 독일 주둔 미군을 기존 3만45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대폭 줄였다. 2020년 6월에는 “트럼프가 한국, 일본, 독일 등의 미군을 귀환시키고 싶어 한다”며 주한미군 감축 검토 사실을 처음 공개해 큰 파장을 불렀다.
● 주한미군, 방위비, 통상협상 연계 가능성
트럼프 당선인이 그리넬 지명자를 발탁한 건 북한과의 직접 대화 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12일 시사매체 타임 인터뷰에서 북한군의 최근 러시아 파병을 거론하며 “북한의 개입은 (전쟁을)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라며 “난 김정은을 안다. 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 난 아마 그가 제대로 상대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해선 북한과의 대화가 중요하단 것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로이터통신도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 인수팀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넬 지명자 역시 북미 정상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올 7월 공화당 전당대회 기간에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기자회견에선 김 위원장을 두고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진단했다. 이어 “트럼프가 그(김정은)와 관여했다는 점을 사랑한다. 이는 트럼프가 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리넬은 2018년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북한 비핵화 협상과 미중 무역협상을 연개해야 한다며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압박을 가해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자는 취지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