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영재’ 소리 들었던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한 엄마가 찾아왔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굉장히 똑똑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더니 수업을 너무 버거워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엄마에게 아이의 어떤 면을 보고 똑똑하다고 느꼈냐고 물었다. 아이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기가 막히게 잘 다뤘다. 한글도 안 가르쳤는데 간판도 빨리 읽었고, 어른하고 대화가 될 정도로 말도 잘했단다. 3세인가 4세 때는 알파벳도 줄줄 읽고, 한자도 꽤 많이 알아서 아이가 영재가 아닌가 싶었단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영재인 줄 알았는데 너무 평범해졌어요”라고 말하는 부모들에게 나는 되묻는다. “영재가 되면 좋겠어요?” 부모들은 조금 당황하며 “아니,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부모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아이가 영재여도, 영재가 아니어도 양육의 큰 지침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영재이든 영재가 아니든, 부모는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 더 신경을 써서 키워야 한다. 아이가 말은 굉장히 잘하는데 움직임이 너무 둔하다. 운동을 잘하게 할 것까지는 없지만, 몸을 많이 움직이는 활동 쪽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아이가 수학 능력이 매우 뛰어난데, 사회성이 많이 떨어진다. 그 부분을 어떻게 보완해줘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가 잘하는 것에 너무 취하면 안 된다. 계속 그쪽만 발달시키면 다른 부족한 영역의 발달은 더 떨어진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유한하다. 자신의 에너지를 배분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잘하는 영역의 발달에 시간을 지나치게 할애하면 부족한 영역의 발달은 시간이 더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영역의 기능은 다 중요하다. 서로서로 뒷받침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발달하지 않으면 한 부분이 우수해도 다른 부분이 받쳐주지 못한다. 다른 영역의 기능까지 우수하게 끌어올리라는 것이 아니다. 평균치 정도는 올라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이가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가 단단하게 자신의 좋은 능력을 발휘하고 사는 데 도움이 된다.
사실 부모들은 아이가 어떠한 영역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 막연하게 공부를 잘할 거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특출나다’ 내지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그 희열을 다시 느끼고 싶다. 하지만 유아기 부모가 아이를 똑똑하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한 암기나 빠른 언어 발달, 빠른 조작 능력 등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단체생활에서 공부를 잘하는 똑똑함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부모가 “아이가 어렸을 때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라며 한숨을 쉴 때, 내가 걱정스러운 것은 그 아이의 마음이다. 아마 부모는 무의식중에 “너 어릴 때 참 똑똑했는데…”라는 말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 말은 아무래도 부정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아이 입장에서는 핀잔이 섞이는 느낌이고, ‘넌 지금은 별로야’라는 무시로 들릴 수도 있다. 부모가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이의 자신감은 당연히 떨어진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