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이후부터 나는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생활과 독립해 혼자 사는 생활을 반복해 왔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독립해 자유롭게 산 지 6개월가량 됐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이미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으니 별다른 잔소리를 하거나 눈치를 주지는 않으셨지만, 괜히 혼자서 찔리는 마음에 눈치를 보곤 했는데 독립을 하자마자 나는 평소 원했던 소소한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 쉽게 오가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운이 좋게 부모님과 가까이 살게 된 나는 본가에 가서 식사하는 날도 있었다. 부모님은 가끔 내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하는 날이면 문자로 메뉴를 보내주곤 하셨다.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오라는 취지였겠지만 나는 오히려 집에 좀 들르라고 은근히 부담을 주시는 건가, 라며 불평 섞인 생각을 했고 건강하지 않은 식생활은 계속됐다.
몸도 마음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가는 듯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집밥’이었다. 집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극심한 피로는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나 휴식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만 해결될 것 같았다. 사실 가장 쉽게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부모님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시간이나 요일을 미리 얘기하지도 않고 불쑥 부모님을 찾아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60대 중반의 부모님은 활동량과 함께 식사량도 줄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시는 바람에 집에 먹을 게 별로 없는 경우가 많아 부랴부랴 냉장고를 뒤져 있는 반찬으로 밥상을 차려주시곤 했다.
집밥이 정말 영양이 고루 잡힌 몸에 좋고 건강한 식단이어서 회복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그보다는 내가 아무리 밖에서 피곤하고 지쳐도 찾아갈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사실, 아무리 늦은 밤에 들이닥쳐도 편하게 밥을 먹을 곳이 있다는 사실이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닐까. 서른두 살 나는 어엿한 성인이니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지만 어쩌면 아직도 부모님의 날개 아래에 있는 철부지인 것 같다. 하지만 철이 없어 보일지라도 한참 더 집밥 먹는 행운을 누리고 싶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