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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칼럼]탄핵 의결로 막 내린 정치 초보자의 무모한 ‘내란 도박’

입력 | 2024-12-15 23:21:00

尹 정치입문 8개월 만에 대권, 大運
독선과 불통 끝에 무모한 ‘계엄 도박’
구차한 변명과 남 탓, 거짓말 그만두고
‘모든 책임은 내게’ 언행일치 보여야



천광암 논설주간


주식시장이나 카지노에서 흔히 쓰이는 말로 ‘초보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란 게 있다. 우연한 행운이 몇 번 이어지다 보면 대개는 자신이 그 분야의 타고난 천재라는 착각과 자만에 빠지기 쉽다. 그러면 점점 무리한 ‘베팅’을 하게 되고 운이 다하는 순간 패가망신하게 되는데, 이를 경고하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보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한국 정치에서 초보자의 행운을 이야기할 때 윤석열 대통령보다 더 적절한 사례는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윤 대통령은 2021년 6월 29일 정치에 첫발을 디딘 지 넉 달 만에 제1야당인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찼고 다시 그로부터 넉 달 뒤에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초보자의 행운을 만난 많은 이들이 흔히 착각하듯이 윤 대통령은 이를 100% 자신의 실력으로 이룬 성취로 받아들였고, ‘정치든 뭐든 내가 최고’라는 자아도취는 이내 독선으로 이어졌다. 많은 검토와 협의, 공사 등의 준비 기간이 필요한데도 “단 하루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취임 전 집무실 이전’을 당선 즉시 기정사실화하고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였다. 약간의 시차는 있었지만 관저 이전도 비슷했다. 아니 한술 더 떠 ‘촉박한 일정’을 이유로 온갖 불법과 변칙이 행해졌다.

독선은 다시 불통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엄청난 무리를 해가며 집무실을 이전한 명분은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 즉 소통이었다. 하지만 도어스테핑은 특정 언론사와의 갈등을 이유로 취임 6개월 만에 중단됐다. 이후 공식 기자회견은 윤 대통령이 ‘편하게’ 생각하는 특정 언론사와의 인터뷰나 대담으로 대체됐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기자회견이 재개되기는 했지만,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당 부분은 끊임없이 의혹과 리스크를 생산해 내는 김건희 여사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두둔하는 내용이었다.

독선과 불통은 정책이고 정치고 예외가 없었다. ‘카르텔 척결’이라는 외마디성 구호를 앞세워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가 거센 후폭풍을 맞았고, 밑도 끝도 없이 ‘2000명’이라는 숫자를 앞세워 의료개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찬성 여론이 70%가 넘는 김 여사 특검 여론에 대해서는 시종 귀를 막았고,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와 관련해서는 ‘런종섭 사태’로 의혹과 비판 여론에 불을 질렀다.

그러자 ‘연금술사’에서 말하는 ‘가혹한 시험’이 찾아왔다. 4·10 총선 참패와 거대 야당의 탄생이 그것이다. 국정과 인사에 대한 대대적 쇄신, 야당과의 협치, ‘여사 리스크 해소’만이 ‘가혹한 시험’을 돌파하는 해법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그것을 선택하는 대신 한국 정치사의 어두운 지하에 45년간 잠들어 있던 ‘비상계엄과 내란의 망령’을 불러냈다. ‘야당 경고용’이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과는 딴판으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한 뒤 특급 보안시설인 수도방위사령부의 B1 벙커 안에 이들을 구금하려 했다는 섬뜩한 증언도 있다. 까딱했으면 불법 구금으로 악명을 떨쳤던 ‘보안사 서빙고 분실’이 되살아날 수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14일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소추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윤 대통령의 자업자득이고, 50년 후퇴할 뻔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불법 계엄으로 인한 비용을 우리 국민이 고스란히 지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제 전문 포브스는 최근 “투자자들이 현대 아시아의 계엄령 집행자를 생각할 때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이제는 한국을 떠올리게 됐다”면서 “결국 5100만 국민이 이기적인 정치적 도박의 대가를 할부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현실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더 독해진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2기’가 출범도 하기 전에, 선장 없는 한국 경제에는 내수 부진과 환율 불안 등의 ‘삼각파도’가 줄줄이 밀려오고 있다. 비용은 할부가 아닌 일시불, 외상이 아닌 현찰로 치러야 할 참이다.

윤 대통령은 ‘내란 시도’가 실패한 뒤에도 구차한 변명과 남 탓, 금세 탄로 날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2년 7개월이나마 국가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던 정치인의 도리가 아니다. 떠나는 뒷모습만이라도, 다만 한순간이라도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의 언행일치를 보여주기 바란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