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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기용]전화벨에 놀라는 음식점… 정치가 살면 경제는 난다

입력 | 2024-12-15 23:15:00

김기용 산업1부 차장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이로써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최종 결정을 전후한 앞으로의 혼란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치 혼란은 필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서울 광화문 근처 음식점 A 사장은 요즘 가게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십중팔구 송년 모임 취소 전화여서다. A 사장의 가게는 홀 테이블 10여 개, 방 10여 개 규모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는 저녁 예약이 70% 수준이라고 했다.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가게들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엄 선포 후 취소 전화가 폭주하면서 예약은 거의 다 사라졌다. 연말 특수는 고사하고 평상시보다 더 장사가 안되는 상황이 됐다. 정치 혼란이 그대로 실물경제에 전이된 것이다. 14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 그 어떤 소회보다도 “국민 여러분,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시길 당부한다”고 말한 것은 경제 위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직장인들의 송년회 취소는 기업의 위축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국내 기업 239개를 조사한 결과 49.7%가 내년 경영계획 기조를 ‘긴축 경영’으로 설정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것이다. 특히 임직원 300인 이상 대기업은 61%가 긴축하겠다고 답했다.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놀랍게도 이 조사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3일) 전인 1일 이뤄진 것이다. 정치적 혼란이 가중된 지금 단언컨대 수치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정치였다. 알리바바, 디디추싱 등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했던 중국 빅테크는 2020∼2023년 중국공산당 눈 밖에 난 이후 기업공개(IPO)를 중단하는 등 시련을 겪고 있다. 일본은 1993년부터 2012년까지 20년간 총리 13명 중 12명의 평균 재임 기간이 426일에 불과했다. 정치 불안은 일본을 저성장으로 몰아갔다. 1994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는 유력 대통령 후보의 암살 등 정치 불안이 원인이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도 정치 지도력 공백과 혼란이 있었다.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진정한 문제는 달러 부족이 아니라 정치 리더십의 부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 안정이 곧바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 안정 없이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은 최근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보면서 “한국이 정치만 살아나면 경제는 날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윤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 후 긴급경제관계장관회의, 대외관계장관간담회 등 주요 회의를 잇달아 개최했다. 정치적 혼란이 기업들의 투자 의지까지 꺾는다면 위기는 더 심화할 것이란 점을 알기 때문이다. 기업의 위축은 그대로 직장인들에게 이어지고 다시 가계 소비 심리 위축으로 전이돼 경제를 얼어붙게 만든다.

정부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정치가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정치가 할 일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상식선에서 예측 가능하기만 하면 된다. 가게에 전화벨이 울리면 사장이 좋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김기용 산업1부 차장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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