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교회 학대’ 온몸 멍투성이 여고생…단장·교인, 왜 살해죄 인정 안됐나

입력 | 2024-12-16 06:33:00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를 받는 50대 여성 교인이 지난 5월 오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4.5.18/뉴스1


지난 9일 오전 인천지법 413호 대법정. 인천 남동구 교회에서 ‘멍투성이’로 발견된 여고생 사건 관련 재판이 열렸다.

법정 안은 신도들과 취재진으로 가득 찼으나, 그중에 피해자인 김지연 양(가명·17) 편에 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 양은 지난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이듬해인 올해 1월부터 정신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교회를 다니는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김 양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말을 횡설수설하거나 불안 증세를 보였다.

김 양의 어머니인 이미령 씨(가명·53)는 남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김 양을 어디론가로 보내야 했다. 이 씨는 합창단장이자 교회 설립자의 딸 박은혜 씨(가명·52)와 남편 장례 절차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장례보다 아이를 보호할 곳이 없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박 단장은 “정신병원 보다 교회에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며 “내가 김 양을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이를 전달받은 이 씨는 “감사하다”며 김 양을 교회에 맡겼다.

이후 박 단장은 교회에서 마사지 등 업무를 하는 허영미 씨(가명·55)와 다른 지원 업무를 하는 양은숙 씨(가명·41)에게 함께 김 양을 돌보게 했다. 허 씨는 박 단장에게 김 양에 대한 모든 보고를 하고 어떠한 행위를 할 때마다 허락을 받았다. 박 단장은 합창단 운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박 단장의 허락은 필수적이었다.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를 보호하거나 치료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박 단장은 허 씨와 양 씨에게 “김 양이 교회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잘 봐야 한다”며 “난동을 부리거나 교리를 따르지 않을 때에는 마음을 꺾어야 한다”고 했다.

허 씨 등은 김 양을 교회 201호에 감금했다. 김 양이 “도망 가고 싶다. 차라리 정신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으나, 이들은 교대로 김 양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김 양의 이상 행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4일간 잠을 자지 못하게 하거나, 복도와 방 등 청소를 시키기도 했다. 또 김 양이 난동을 부릴 경우 팔과 다리를 결박한 채로 입을 막고 눈을 가렸다. 지하 1층부터 7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도록 시키거나 성경 필사를 시키기도 했다.

허 씨 등은 김 양에 대한 가혹행위를 이어갈 때마다 박 단장에게 이를 일일이 보고했다. 보고용 메시지를 받은 박 단장은 “계속 일 시켜”라든지 “좋아질 거야”라고 보내면서 이들의 행위를 승인했다.

김 양의 상태는 지난 5월 초부터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할 만큼 안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 씨 등은 김 양을 데려가 치료받도록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 양을 더욱 강하게 결박하기 위해 ‘치매 환자용 밴드’를 구입한 뒤 가혹행위를 이어갔다. 결국 김 양은 쓰러졌고, 다리 부위 등에 생긴 혈전으로 발생한 ‘폐혈전색전증’으로 지난 5월 16일 사망했다.

김 양의 죽음으로 박 단장, 허 씨, 양 씨 등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자신의 딸을 병원에 보내지 않고 교회로 보낸 이 씨는 아동복지법상 아동유기·방임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 내내 박 단장과 허 씨, 이 씨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허 씨 등은 오히려 “정신병원보다 안전한 병원에서 성심성의껏 김 양을 돌봤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어머니인 이 씨는 “(허 씨 등이) 돌봐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차례 이어진 증인심문 등은 3시간이 넘게 걸릴 때도 있었지만 교회 신도 등은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인천지법 형사14부(정우영 부장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아동학대치사로 변경해 박 단장과 허 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또 양 씨에게는 징역 4년을, 김 양의 어머니인 이 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죄명을 변경한 이유는 “피고인들이 살해하려 했다는 고의가 미필적으로라도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김 양이 쓰러진 날 허 씨 등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신앙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피해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점”도 양형사유로 고려했다. 또 김 양의 어머니이자 이 사건 피고인인 이 씨와 김 양의 친언니가 박 단장과 허 씨 등의 처벌을 원치 않는 점도 감형 사유가 됐다.

박 단장 등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이며, 검찰 측도 ‘아동학대살해를 인정하지 않은 1심 재판부는 법리를 오해했다’는 취지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인천=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