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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12월3일 한국 경제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입력 | 2024-12-16 23:18:00

박용 부국장


2019년 미국 뉴욕 외신기자 취재 현장에서 당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던 홍콩의 유력 언론사 기자를 만났다. “한국 특파원이라는 걸 알고 있다”며 명함을 건넨 그는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룬 한국이 부럽다”고 말을 걸어왔다. 결연한 그의 표정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묵직한 믿음이 느껴졌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계엄군이 국회로 난입하는 한국 상황을 지켜봤다면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 45년 만의 계엄 선포 이후 대한민국에 대한 세계의 시선은 달라졌다.

경제와 민주화 성공한 韓 모델 의심받아

한국은 경제 발전과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6시간 계엄’은 세계가 칭송한 한국 민주화의 유산을 걷어찼다.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의회와 정당 활동,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고 군이 모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하며 이를 어기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당하는 나라’가 됐을 것이다. 누가 이런 나라에 투자하겠나.

윤석열 대통령은 ‘경고성 계엄’이라고 했지만, 해외 언론은 ‘GDP(국내총생산) 킬러’라고 불렀다.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유럽계 제조회사 한국 법인 직원은 계엄 직후 “밤새 본사에서 e메일이 많이 왔고 오전부터 긴급회의가 잡혔다”고 걱정했다. 외국 방산기업은 한국 법인 직원을 철수시켰고, 해외 정상과 바이어들의 방한 계획도 줄줄이 취소됐다. 그나마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한국 경제의 대외 건전성이 크게 나아진 건 다행이다. 외환보유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갑절로 늘었고 단기외채 비중도 당시의 절반에 불과하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과 대외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중국 특수가 있었던 2004년과 반도체 호황기인 2016년의 탄핵 국면보다 현재의 대외 여건이 좋지 않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기술적 우위가 사라지고, 중국 기업의 밀어내기 공세는 철강, 석유화학에서 반도체, 자동차로 확산되고 있다. 내년 성장률은 1%대로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5분의 1이 넘는 ‘초고령사회’에 처음 진입한다.

내년 1월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다. 미국이 국제질서에서 발을 빼는 ‘미국 없는 세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크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됐다”며 “다수의 국가가 관여하는 전장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 문제에 관해서는 정치 문제에 개의치 않고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했지만 ‘경제안보’ 시대엔 구두선에 가깝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국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돼 내각이 붕괴된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한국의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도 ‘탄핵’하려 들 것이다.

정치가 경제 망친 ‘한국화’ 선례 막아야

정치가 경제를 망친 ‘한국화’의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면 해외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을 자극하는 정정 불안을 최소화하고 단기 대책보다 민관이 중장기 성장 잠재력 확충에 매진하게 하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거대 야당’이 초유의 감액 예산안을 단독 통과시키고 탄핵 국면에서 승자처럼 군림하며 지역화폐나 정책 대출 등의 선심성 돈풀기 정책이나 기업 반발이 큰 상법 개정안 등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역풍을 맞는다. 여야 이견이 적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지원과 국가전력망 확충을 위한 산업 경쟁력 복원 법안부터 처리하는 게 순리다.

한국 사회는 계엄 해제부터 탄핵 표결까지 질서 있게 치러 내 미국이 평가하듯이 ‘민주주의 회복력’을 확인시켰다. 이제는 한국 경제의 복원력을 보여줄 차례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