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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소소칼럼]

입력 | 2024-12-17 14:36:00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구름다리에서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0.1.15.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윤석열. 그는 검찰총장 시절 유달리 사진 찍히기를 싫어했던 관료였다. 그는 취재진의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대검찰청 정문 대신 매일 지하 주차장을 이용했고, 구내식당으로 이어지는 청사 구름다리 통로를 선팅으로 도배하게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제20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5일 부산 부전동 서면 젊음의 거리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2.2.15.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대 대선에서 국회 사진 기자로 만난 윤 총장은 이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돼 있었다. 기자는 윤 후보가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어퍼컷을 날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카메라 노출을 꺼렸던 그가 달라졌다. 일명 윤퍼컷! 거구의 체격에서 오는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물 한 모금만 마신 뒤 원고 없이 한 시간 넘게 좌중을 휘어잡는 연설을 할 수 있는 달변가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이미지에 담기지 않는다. 윤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는 어퍼컷 이미지도 한몫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첫 민생 행보로 서울 남대문시장을 택했다. 그는 상인연합회 관계자들과 함께 시장 내 국밥집에서 ‘꼬리곰탕’을 먹었다. 대선 홍보 영상에서 국밥을 먹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탈권위, 친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8.16.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취임 직후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도어스테핑을 시도한 것도 윤 대통령이었다. 도어스테핑은 출근하면서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이 주요 현안에 대해 짧게 묻고 답하는 ‘약식 회견’이다. 공식 일정이 아니면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매일 대통령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취임 초기 대통령실 사진기자단은 바빴지만 보람찼을 것이다. 대통령을 날것 그대로 매일 촬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이미지의 민주화’였다. 그러나 이런 소통은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했다. 도어스테핑을 진행하던 곳엔 대통령 동선과 취재진을 차단하는 가림막이 설치됐다. 대통령실은 “보안상의 필요성에 의해 설치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대통령실 비서관과 MBC 기자와 설전을 떠올렸다.

이후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때처럼 기자들의 카메라를 피하기 시작했다. 7월 기자가 대통령실에 출입하게 됐을 땐 사진을 찍는 것보다 청사에 멀뚱멀뚱 앉아 있는 일이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2024.10.21. 대통령실 제공


굵직굵직한 이슈들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윤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갈등이 있었을 때도, 의정 갈등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을 때도 대통령실 사진기자단은 무력했다. 청사에서 그저 전속 사진이 제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지면에 실리는 윤 대통령의 사진 아래 바이라인은 대통령실 사진기자단이 아닌 대통령실 제공으로 채워졌다.

이달 3일 밤 10시 23분, 윤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열고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도 현장에 기자들은 없었다. 아니 있었으나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담화는 굳게 잠긴 브리핑 룸에서 진행됐다. 기자들은 대통령실에 문을 열어달라고 항의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비상계엄 선포 11일 만에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탄핵안이 가결된 세 번째 대통령이 됐다. 탄핵 직후 나온 ‘국민께 드리는 말씀’ 역시 대통령실 제공이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 윤 대통령은 소통을 표방하며 변화를 시도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예전의 불통 이미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본인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한남동 관저에서 국민꼐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며 인사하고 있다. 2024.12.14. 대통령실 제공


문득 기자는 2020년, 검찰총장 시절의 윤 대통령을 찍을 때가 생각났다. 사진기자들은 매일 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윤 총장을 찍기 위해 대검찰청 징검다리에 모였다. 기자들은 초망원 렌즈가 탑재된 카메라를 들고 목을 꺾은 채 기약 없이 윤 총장을 기다렸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리던 르네상스 화가 미켈란젤로의 고통을 느꼈다. 그해 겨울은 유달리 추웠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때와 지금의 윤 대통령을 생각하며 떠오른 말이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