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다양한 낚시도구, 작살류, 그물류를 볼 때마다 생각에 잠긴다. 저런 종류의 어구를 사용해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었다면 물고기 개체수가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수렵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기술이 뛰어나서일까. 의문을 풀기 위해 자료를 뒤적였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이런 어로 방식을 ‘전어지’(서유구·1840년경)에서는 포리법(捕鯉法)이라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나무 몽둥이를 들고 하류의 먼 곳에서 얼음을 두드리면 소리에 놀란 물고기가 달아나다가 그물을 둘러놓은 안으로 들어간다. 그물 위 얼음에 구멍을 뚫어, 물고기가 지나가면 작살로 찔러서 잡는다.” 마지막 단계에서 서유구는 작살로 찔러서 잡는다고 했고, 로웰은 삼봉낚시 홀치기로 잡는 현장을 기록했으나, 전체적인 어로 과정은 동일하다. 작살이든 홀치기든 물고기 개체수가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한 방식이다.
‘전라도 무장현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조선 후기)는 창살 모양의 ‘어전(漁箭)’으로 고기 잡는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무장현(지금의 전북 고창군) 갯벌에 설치된 어전은 죽방렴과 유사한 형태다. 어살이라고도 부르는 어전은 물고기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해 꼼짝없이 갇히는 방식의 나무 울타리다. 이와 같은 원리로 돌담을 쌓아서 가두리를 만드는 돌살(혹은 독살, 원담, 갯담)이 있는데 둘 다 어구 기능은 거의 상실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물고기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투박하고 거칠고 성긴 어구에도 잘 잡히던 물고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