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한국에 산 지 거의 10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한국 운전면허를 땄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 운전면허를 한국 면허로 교환했다. 하지만 과정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주행시험을 볼 필요가 없었지만, 필기시험은 꼭 봐야 했다. 부담스러울 수 있는 필기시험을 또 다른 배움의 기회로 받아들이기로 해서 문제집과 앱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과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학습지로 똑같이 공부했다.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시험이 없는 한국 인생을 상상할 수 있을까? 수능뿐만 아니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전문적인 시험이 있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서울 지하철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 광고가 얼마나 많은지에 놀랐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시험도 따로 있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내 모국인 미국에서는 그런 직업들은 주로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도로의 규칙들에 대한 지식과 운전 실력도 별로 없는 운전자들이 많은 미국에서 운전면허 시험은 너무나도 쉽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인 작가 매슈 크로퍼드가 ‘운전하는 철학자’에서 이야기했던 탈숙련화(deskilling)라는 현상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자동변속기와 GPS 내비게이션을 장착하고 안전장치가 끊임없이 많아지고 있는 오늘의 자동차가 인간의 실력과 판단의 필요성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점차로 커지고 무거워지는 이 시대의 차는 운전자가 도로와 주변에서 운전하는 타인들과 고립되는 것을 가속한다고 저술했다. 이와 더불어 차의 기술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사람들이 더 부주의하게 운전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 문제의 해법이 운전면허 시험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 성공하기 위한 지식과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지식이 180도 다르기 때문이다. 영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반드시 영어를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운전면허를 딴 사람이 능숙히 잘 운전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은 자명하다. 기본적인 영어만 해도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굳이 유창하게 구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거나 주변 상황을 면밀히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시험장 같은 곳에서만 운전하는 사람은 실력이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처음 몇 번 서울에서 운전해 보면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내 운전 실력이 많이 늘어난 것처럼 느꼈다. 지난달 미국에서 오신 우리 부모님을 차로 모시고 다녔는데 부모님께선 계속 ‘한국에서 운전하기 너무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셨다. 인구가 1만5000명도 안 되는 미국 소도시에 계신 부모님은 서울의 혼잡한 교통량과 좁은 길에 익숙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혼잡도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서울에서 운전하는 것이 미국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다. 내가 보기에 미국과 한국 운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혼잡도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주변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지 몰라 항상 주의해야 한다. 미국 사람들은 다른 운전자들이 모두 규칙을 준수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들은 다른 운전자들이 완벽하지 않아서 규칙을 아무리 잘 알아도 그 규칙을 어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며 운전한다.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