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담배를 피우는 걸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담뱃갑에 붙어있는 사진을 보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13일 경기 고양시에 사는 이모 양(16)은 담뱃갑에 붙은 폐암, 후두암 등 각종 질환 사진과 문구를 보면 담배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다 중독되면 건강이 망가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암에 걸려서 고생하느니 시작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흡연이 유발하는 건강 폐해를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담뱃갑 건강경고 그림과 문구가 23일부터 변경된다. 전문가 사이에선 금연을 유도하고 청소년 흡연 예방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담뱃갑 건강경고 표기면적 확대, 표준담뱃갑(Plain packaging) 도입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담뱃갑에 건강경고 흡연율 감소 효과 입증”
담뱃갑 건강경고는 담뱃갑 겉면에 흡연 폐해를 나타내는 경고 그림이나 문구를 표기하는 제도다. 2001년 캐나다가 최초로 도입했으며 지난해 기준으로 총 138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은 모두 담뱃갑에 건강경고를 표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뱃갑 건강경고는 담배 위해성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데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 담배의 매력도를 감소시켜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것”이라며 각국에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담뱃갑 건강경고를 도입했을 때 담배 소비량 감소, 금연 유도, 금연 동기 유발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흡연율 감소 효과도 증명됐다. 2015년 OECD가 담뱃갑 건강경고 도입 국가들을 분석한 결과 흡연율이 평균 4.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의 경우 도입 이후 흡연율이 13.8%포인트나 감소했다.
● 23일부터 새 경고 그림 도입
담뱃갑 건강경고 그림과 문구는 2년 주기로 교체된다. 흡연자가 담뱃갑에 부착된 경고 문구와 그림에 익숙해지는 걸 방지하고 의미를 더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달 23일부터 도입되는 담뱃갑 건강경고 그림에는 기존의 폐암, 후두암, 구강암, 심장질환, 뇌졸중에 더해 안질환과 말초혈관질환을 경고하는 사진이 추가됐다. 간접흡연, 성기능 장애, 치아 변색, 임산부 흡연, 조기사망 경고 그림 중 임산부 흡연과 조기 사망 그림은 빠졌다.
경고 문구는 단어형에서 문장형으로 변경된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폐암 경고그림 하단에 ‘폐암’이란 단어만 나왔다. 23일부터는 ‘폐암으로 가는 길’이란 문장이 등장한다. 이번에 교체되는 그림과 문구는 2026년 12월 22일까지 유지된다.
●“건강경고 표기 면적 확대 등 필요”
전문가 사이에선 담뱃갑 건강경고 그림과 문구를 교체하는 수준을 넘어 2026년 말에는 건강경고 면적 확대, 표준담뱃갑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에선 2016년 제도 도입 이후 10년 동안 경고 그림 및 문구 교체 외에는 추가 규제 강화 조치가 없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담뱃갑에서 건강경고가 차지하는 면적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담뱃갑 건강경고 표기 면적은 앞뒷면 모두 50%로 OECD 38개국 중 30위다. 건강경고 표기 면적이 가장 큰 국가는 튀르키예로 담뱃갑의 앞면 85%, 뒷면 100%에 건강경고 표시를 하고 있다.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벨기에가 등도 한국보다 표기 면적이 크다.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담배 제품의 포장 디자인을 통일하는 표준 담뱃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품별로 제각각인 담뱃갑 디자인을 한 가지로 통일하고, 제품 이름과 브랜드만 정해진 색 및 정해진 글꼴로 표기하게 하자는 것이다. 호기심을 끌지 못하게 담뱃갑 포장을 활용한 광고 등을 제한하자는 취지다. 호주와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뉴질랜드 등 25개국이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러시아, 홍콩, 말레이시아 등 14개국이 추진 중이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담배 광고는 특히 청소년 흡연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며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담배 제품의 포장 디자인을 통일하는 표준 담뱃갑은 담배를 덜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