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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뺀 모든 게 다 ‘거짓’…배우자 속인 남편 ‘혼인취소’ 판결

입력 | 2024-12-18 14:21:00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의 모습. 뉴시스


배우자가 자신의 이름과 직업 등을 속인 점은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7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대구가정법원 경주지원은 A 씨(36)가 남편 B 씨(51)를 상대로 제기한 혼인 취소 소송에서 “원·피고 사이의 혼인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A 씨와 B 씨는 모바일 게임을 통해 만났다. B 씨는 A 씨에게 “(자신은) 국군 특수부대 정보사 출신이라며 얼굴이 노출되면 안 되고, 본인 명의의 통장도 개설할 수 없다. 모든 것이 기밀”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교제를 이어가며 혼인신고를 하고 자녀를 출산했다. 자녀를 출산한 뒤 A 씨는 B 씨의 신상을 확인해 봤고, 이름, 나이, 초혼 여부, 자녀 유무, 가족관계, 군대 이력 등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B 씨는 A 씨 몰래 명의를 도용해 대출을 받는 등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 B 씨는 임신 중이었던 A 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정체가 드러난 B 씨는 A 씨가 폭행 등을 이유로 경찰에 형사 고소하자 잠적했으며 지명수배자가 된 후 구속돼 교도소에 수감됐다.

A 씨는 사기에 의한 혼인 취소와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권을 단독으로 받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A 씨를 대리해 B 씨를 상대로 혼인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공단은 B 씨가 A 씨와 교제 및 동거하는 동안 B 씨의 이름, 생일, 직업, 부모 여부, 초혼 여부, 자녀 유무, 경력, 재력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망하지 않았다면 A 씨는 B 씨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는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B 씨는 법정 진술에서 “자녀는 A 씨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이라고 주장했으나 유전자 감정 결과 B 씨의 친자로 확인됐다.

법원은 공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A 씨와 B 씨의 혼인을 취소하고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A 씨를 지정한다”고 판결했다.

소송을 진행한 공단 소속 유현경 변호사는 “사기 결혼의 경우 기망당한 피해자가 겪는 심적인 고통, 신분관계에서 오는 불이익, 재산상 손해 등 피해가 매우 크다”며 “사기 결혼으로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의 장래와 복리를 위해 양육권자를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현 동아닷컴 기자 tmd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