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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심장마비 고독사” 76세 할머니의 호탕한 선언…‘즐거운 어른’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입력 | 2024-12-19 11:00:00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심장마비 고독사로 본인은 물론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고 깔끔하게(?) 세상을 떠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76세 할머니가 있다. 자녀에게 “절대 유명해지지 마라”고 당부하고 주위 시선에 신경 쓰면 “너 아무도 안 쳐다봐!”라고 잘라 말한다. 글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 대문호에게 “야, 이노무 자슥들아~~”라고 일갈한다. 비혼 여성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데 대해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라고 한다. 에세이 ‘즐거운 어른’(이야기장수)을 쓴 이옥선 작가다.

호탕하면서도 삶에 대한 깊은 내공을 유쾌하게 담은 ‘즐거운 어른’은 올해 8월 말 출간되자마자 반향을 일으켰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임에도 책이 출간된 지 3주 만에 1만 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출간 40일 만에 10쇄를 찍으며 계속 빠르게 나가고 있다.(출판사는 정확한 판매 부수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만에 판권이 팔렸고 일본 중국에서도 출간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알라딘이 올해 신설한 ‘올해의 신인상’ 작가로 선정됐다. 예스24에서 선정한 ‘오늘의 책’ 24권에도 포함됐다.  

‘즐거운 어른’을 쓴 이옥선 작가. 그는 육아일기 ‘빅토리 노트’를 딸과 함께 출간한 후 책을 더 내지 않겠다고 했지만 출판사 대표와 딸의 집요한 설득에 다시 책을 낸 데 대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변명합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정멜멜


부산에 사는 이 작가를 1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책은 내지 않겠다는 이 작가를 설득한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40)도 경기 파주시 이야기장수 출판사에서 9일 만났다. 이 대표는 2007년 문학동네에 입사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김난도 지음), ‘라면을 끓이며’(김훈), ‘걷는 사람, 하정우’(하정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 베스트셀러를 숱하게 낸 스타 편집자다. 

이 작가는 독자들의 반응에 놀랐다고 했다.  

“출판사에 손해만 안 끼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고마워요.”

자녀에게 유명해지지 말라고 했던 그가 막상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 나이에는 유명해져봤자 텔레비전에서 뜰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도 아니에요. 혹시나 이름이 알려져도 금방 잊혀질 겁니다.(웃음)”  

‘즐거운 어른’ 표지. 이옥선 작가가 매일 목욕탕에 가는데 착안해 목욕탕 풍경을 담았다. 띠지는 때수건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이야기장수 제공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한양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진주로 돌아와 3년 정도 교사 생활을 했다. 같은 학교에서 만난 국어 교사(고(故) 김창근 동의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와 결혼해 일을 그만뒀다. 부산에서 살며 두 아이를 키웠다. 딸이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황선우 작가와 함께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쓴 김하나 작가다. 이 작가는 아들, 딸을 낳은 후 두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각각 5년씩 육아 일기를 썼다. 자녀가 성인이 되는 스무 살에 이를 선물하기로 마음먹은 것. 딸이 대학 입시에 떨어져 울고 있을 때 그는 육아 일기를 건넸다. 아이의 성장 과정이 생생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담긴 육아 일기는 2022년 책으로 출간됐다. ‘빅토리 노트’로, 육아 일기와 함께 추가로 쓴 에세이 몇 편이 실렸다. 이 대표는 “빅토리 노트 출간 북토크에서 이 작가님의 거침없는 입담에 웃다가 쓰러질 뻔 했다. ‘꼭 책을 써야 하는 분’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육아 일기를 쓴 것 외에는 평소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메모하는 습관도 없단다. 

“숙제를 싫어해서 책은 안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 대표와 김하나, 황선우가 부산에 내려와 두 시간 넘게 설득하더라고요. 김하나가 ‘계약서에 사인하고 3년쯤 그냥 지내다 계약금 돌려줘도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인했어요. 억지로지만 계약이란 걸 하니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쓰고 싶은 말이 속에서 생겨나기도 했고요. 70년 넘게 모여 있던 게 한꺼번에 나왔다고 할까요.” 

이 작가는 신선한 관점으로 삶과 세상을 예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통찰한다. 남성들이 여성의 젖가슴이 큰 걸 좋아한다는 말에 “우리 어머니 세대분들은 이 말을 들으면 ‘어릴 때 다들 젖배를 곯았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자녀에게 유명해지지 말라고 한 이유도 설명한다. “길에서 나자빠졌을 때 아무도 너를 모르면 그냥 툴툴 털고 일어나 갈 길 가면 되지만,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너를 알아보면 얼마나 쪽팔리겠니.”   

그는 심장마비 고독사로 세상을 떠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구급 출동 시스템이 너무 잘 돼 있어 쓰러졌을 때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119에 연락해 일사천리로 응급처치에 들어가고 이후 병원을 전전하는 생활이 이어진다는 것. 이 때문에 홀로 심장마비로 떠나야 자신과 가족이 고생하지 않는다고. 

결혼도 굳이 할 필요가 없단다.

“예전에는 나이 들어 외롭다며 꼭 결혼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제 남편을 포함해 친구 남편 등 주위를 보면 대부분 남자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고요. 여자들은 간병하다 결국 혼자 남고요. 결혼이 노년의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는 세대 갈등에 대해서도 “노인 세대를 교육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식에게 안부 전화하라고 요구하면 안 돼요. 자식들은 사느라 바빠 부모에게 관심이 없어요. 어련히 잘 살고 계시겠지 생각하죠. 저도 예전에 부모님 안부가 궁금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니거든요. 자기 아들도 전화 안 하는데 남의 딸인 며느리가 왜 전화하길 바라나요. 자식에게 집착하면 안 돼요.”

이 작가는 딸이 제일기획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둘까’라는 의문이 들고 걱정도 됐지만 이유를 꼬치꼬치 묻진 않았다.

“자기도 사정이 있겠죠. ‘살다가 힘들면 엄마가 밥은 먹여줄게’라고 했어요. 메일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다시 광고 일 할지도 모르니까 자기가 마시던 우물에 침 뱉고 나오지는 마라’고 썼어요. 니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싶었고요.”  

‘즐거운 어른’을 쓴 이옥선 작가. 그는 글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 지식인들을 대차게 비판한다. 그리고 말한다. “예수님은 아셨던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전혀 사랑스럽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 그렇게나 서로 사랑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것이다.” ⓒ정멜멜



장 자크 루소, 톨스토이, 버틀런드 러셀, 마르크스, 사르트르에게 “야, 이노무 자슥들아~~”라고 일갈한 이유를 물었다. 

“자기는 여러 여자 만나고 자식과 아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막 살면서 글은 그럴 듯하게 쓰는 사람들은 욕 먹어야 해요.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 대문호, 지식인이라도 기분 나쁜 건 뭐라 할 수 있잖아요? 어중이 떠중이에게 욕해 봤자 내 입만 귀찮고요.”

이 작가는 결혼 후 남편과 자주 싸웠다고 한다.  

“같은 학교 선생으로 만났는데도 남편은 남녀가 동등하다는 인식이 전혀 없었어요. 김하나는 엄마 아빠가 싸워서 불안했다고 하는데요, 싸움은 격렬한 대화예요. 제가 갱년기 때 땅으로 꺼질 것 같은 우울증이 안 온 건 참지 않고 남편과 싸움이라도 했기 때문이라고 봐요.(웃음)”

그의 글을 보며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는 게 뭐라고’ 등을 쓴 일본 작가 사노 요코를 떠올리는 독자도 있다. “사노 요코가 살아 있다면 이 작가님과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코 요코는 정말 쿨한 작가죠. ‘사는 게 뭐라고’에서 ‘최후의 여자 사무라이’라는 장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여자도 기개가 있어야 하고 자기 심지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적극 동의합니다.”

이 작가의 별명은 ‘목욕탕의 철학자’, ‘해운대의 현인’, 호는 ‘냉탕’이다. ‘냉탕 이옥선’으로 불린다.(김하나, 황선우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 출연해 고민 상담도 해주고 있다.) 

한데 이 작가는 책 제목에 ‘어른’이 들어가는 걸 강하게 반대했다.

“어른이라고 하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님이나 경기 여주에서 괴테마을을 운영하는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님처럼 사회에 기여하는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런 어른이 아니에요.” 

‘즐거운 어른’을 출간한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 그는 “이 작가님이 출간을 거절하면 수락할 때까지 몇 번이고 부산에 내려갈 생각이었다”고 했다.  ⓒ정멜멜


‘의리라면 여자’, ‘엄마가 되면 비겁해진다’ 등 톡톡 튀는 22개 소제목은 모두 이 작가가 정했다. 이 대표는 “소제목 정하기는 고난도의 작업이라 편집자가 막판까지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이 책은 소제목을 작가님이 다 정해주셔서 정말 수월하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건 꾸준히 책을 읽고 세상사에 대해 계속 생각해 왔기 때문이라고 이 대표는 분석한다. 

“편집은 오탈자 고치는 정도만 했어요. 작가는 글을 쳐내는 것을 가슴 아파하는데 이 작가님은 ‘이건 재미없다. 빼자’고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매주 한 챕터씩 보내는 원고가 손꼽아 기다려질 정도로 책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작가에게 출연 제안이 들어오고 있지만 거절하고 있다. 이 대표가 계속 설득하자 이 작가는 단호하게 말했다.  

“잘 들으세요, 장수님.(이야기장수 대표여서 그는 ‘장수님’으로 불린다) 내가 80줄이 다 돼 가는 노인입니다. 목욕탕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이 대표는 “(이 작가님의) 방송 출연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씩 웃었다. 

‘즐거운 어른’을 쓴 이옥선 작가.  요즘 머리로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고 있다. ⓒ정멜멜


책 표지 그림은 이 작가가 매일 목욕탕을 가는 데 착안해 목욕탕 풍경을 그렸다. 띠지도 초록색 때타월로 디자인했다. ‘따뜻한 할머니는 품어주지만, 까칠한 할머니는 해방시킨다’는 띠지 문구는 김하나 작가가 썼다.  

이야기장수는 2022년 문학동네 임프린트로 출발해 올해 법인으로 전환됐다.

“월급을 받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제가 편집자와 마케터에게 월급을 줘야 하는 입장이 되니까 무서웠어요. ‘즐거운 어른’은 이야기장수를 운영하는데 기둥이 된 책이에요. 이 작가님은 제게 금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유를 주셨습니다.”

중학생 때 “노벨문학상을 받는 문인이 되겠다”고 진지하게 말했던 이 대표는 대학 전공도 국어국문학을 선택했다. 문학동네에 입사한 건 1년만 일해서 월급을 모은 뒤 글을 쓰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편집자 업무가 너무나 재미있어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잊었다고 한다.(이 대표는 ‘에세이 만드는 법’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편집자는 담요 쓰고 교정만 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놀라운 작가들을 다 만날 수 있더라고요! 꿈꾸던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죠. 다른 선물이 기다리는 게 인생이더라고요.” 

이 대표는 평소 신문, 잡지를 꼼꼼하게 보며 글을 잘 쓸 사람을 찾는다.

“뚜벅뚜벅 자기 인생을 살아온 분은 이미 예술가이기에 펜을 딱 쥐어주면 진짜 잘 쓰세요. 이 작가님이 그렇죠. 박미옥 반장님은 악수하는 순간 반해 제가 바로 도장 찍자고 했어요. 에세이 ‘형사 박미옥’이 출간됐죠. 이런 분들을 찾아낼 때 정말 짜릿해요.”

그는 작가와 책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 등에 적극 나선다.  

“일각에서는 ‘편집자는 책 뒤에 있는 사람인데, 작가보다 자기가 더 유명해지려고 한다’는 비판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작가와 책을 한 번이라도 더 알릴 수 있다면 뭐든 할 거예요.”

이야기장수는 에세이를 주력으로 하며 소설, 시, 인문 분야 책도 내고 있다.

“책은 신비해요. 가슴에 꽂히는 말을 붙잡아놓는 보물 상자 같아요. 일본 미시마샤 출판사 대표님이 ‘나는 노(No) 장르’라고 하셨는데, 저도 그래요. 재미있고 새로운 이야기면 장르에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분들이 읽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즐거운 어른’은 후속작에 대한 요구도 뜨겁다. 이 작가는 “쓰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매일 목욕탕 가고, 요가도 하며 친구들 만나는 나의 루틴을 유지하고 싶어요. 3년 후에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쓰고 싶지 않습니다.(웃음)”

■‘즐거운 어른’(이야기장수·2024년)은….

두 자녀를 키운 이옥선 씨(76)가 인생과 세상에 대한 특유의 쿨한 생각을 거침없이 쓴 에세이다. 자신의 꿈은 심장마비 고독사라고 밝히고, 자녀에게 ‘절대 유명해지지 마라’고 당부한다. 톨스토이, 장 자크 루소 등 글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 거장들에게 “야, 이노무 자슥들아~”라고 일갈한다.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에게는 그의 어머니 세대가 했던 말을 들려준다. “어릴 때 다들 젖배를 곯았나~.” 비혼 여성의 증가를 우려하는 시선에 대해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고 말한다. 

이 작가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한양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진주에서 교사로 3년 정도 생활하다 그만 둔 후 부산에서 두 아이를 키웠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국어 교사((고(故) 김창근 동의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와 결혼했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김하나 작가가 딸이다. 이 작가는 아들과 딸이 태어난 후 5살까지 각각 5년간 육아일기를 썼다. 김하나 작가의 육아일기에 에세이 몇 편을 추가해 ‘빅토리 노트’를 2022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자유롭고 명랑한 할머니의 삶을 보여준다. 그는 남편을 보낸 후 남편의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집안의 남자 어른들이 다 세상을 떠난 후 시아버지의 기제사에 참석해보니, 동서들과 자신까지 다른 성 씨를 가진 여자들만 남았다는 것. 추석에도 각자 집에서 알아서 지내기로 했단다. 그는 “기제사, 벌초 등 시댁의 모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코로나 기간 동안의 학습으로 굳이 명절이나 제사에 같이 모이지 않는다고 하늘이 벌을 주거나 집구석이 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썼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제사는 지내지 말고 자녀와 손주들이 그날 시간이 되면 좋은 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으라고 미리 당부했다.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해피엔딩은 없다”고 말한다. 부부 중 한 명은 먼저 세상을 떠나는데, 투병하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남은 한 명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남편은 다리를 다친 후 5개월 간 대학병원과 재활병원을 오가며 큰 수술과 각종 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금 자신의 나이를 ‘골든 에이지’라고 명명한다. 젊었을 때는 공부해야 하고 이후에는 직장을 다니거나 아이를 키우고 제사를 비롯해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등 의무가 많았는데, 이제 이를 다 끝내고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노년에 시간이 많으니 봉사 활동을 하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되면 할 일이 없어 주리를 틀어댈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지만 할머니들도 나름대로의 루틴이 있다”고 말한다. 배우고 싶은 것도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이 작가는 매일 목욕탕에 가고, 일주일에 세 번 요가를 한다.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산책하고 차를 마시며, 일요일에는 헬스장에 간다. 궁금한 게 있으면 유튜브를 찾아보며 공부한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며 자신만의 철학과 내공을 다져온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고전 문학 작품은 물론 새무얼 스마일스의 ‘인격론’,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노라 에프런의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 폴 존슨의 ‘지식인의 두 얼굴’, 지셴린의 ‘다 지나간다’ 등을 읽으며 느낀 단상이 곳곳에 담겼다. 

각종 정보가 오가고 스트레스를 푸는 장이 되는 목욕탕 풍경도 세밀화처럼 그린다. 물메기탕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알려주고, 김장용 배추는 해남산이 좋은지 강원도 고랭지 배추가 좋은지 비교한다. 친정 동네 고추 자랑을 하다 공동구매로 이어지기도 한단다. 건강 관리법 교환은 기본이다. 어린 시절 온 식구가 나서서 장작을 들여오고,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우물을 치는가 하면 공터에서 널뛰기하던 풍경도 떠올린다.

시원시원하고 알싸한 글에 웃음이 쿡쿡 터진다.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하면서도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뼈 때리는 돌직구를 빵빵 날리는 유쾌하고 지혜로운 어른을 또 한 명 만나게 됐다. 


파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