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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깃든 진한 추억… 먼저 간 아내가 떠올라,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다

입력 | 2024-12-19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96〉상실감을 맛보다



영화 ‘피그’에서 다리우스는 롭이 요리한 과거 아내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복받치는 감정에 흐느끼고 만다. 판씨네마 제공


죽은 이를 애도한다는 ‘도망’이란 말이 아내의 죽음을 애달파 하는 시의 전용 명사가 된 것은 서진(西晉)시대 반악(潘岳)의 ‘도망시(悼亡詩)’부터였다. 우리 한시 중에선 조선 후기 심노숭(沈魯崇·1762∼1837)의 도망시가 특히 마음을 울린다. 시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동갑내기 아내 전주 이씨가 세상을 뜬 이듬해 시인이 서울 남산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쓴 작품이다. 시인은 2년여 동안 아내를 애도하는 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는데, 아내 잃은 슬픔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걸 꺼리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선 이채로운 경우였다.

시의 전반부에선 아내가 매년 봄 쑥을 뜯어 만들어 준 음식을 중심으로 행복했던 기억들이 소환된다. 어느 날 시인은 제수씨가 차려준 밥상에 올라온 쑥을 맛보곤 울컥하여 목이 멨다. 아내 무덤 위에 돋은 쑥은 그 상실감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의 ‘피그’(2021년)에서 다리우스가 죽은 아내를 떠올린 것도 음식의 추억 때문이었다. 영화는 표면적으론 과거 유명 셰프였던 롭이 잃어버린 송로버섯 탐지 돼지를 찾는 내용이지만, 이면에는 아내의 부재로 상실감에 허우적거리는 두 남자의 사연을 담고 있다. 다리우스는 냉혹한 식품사업가로 돼지를 훔치게 한 장본인인데, 롭이 요리한 과거 아내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복받치는 감정에 흐느끼고 만다. 상실감을 달래주던 돼지의 죽음에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아 통곡하던 롭은 집에 돌아와 차마 듣지 못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튼다.

시와 영화는 모두 망자와의 사연이 서린 사물을 통해 아내 잃은 남편의 바닥 모를 상실감을 드러낸다. 일찍이 반악이 아내 잃은 상실감을 “사물에 느꺼워 슬픈 심회 돌아오고, 복받친 감정 따라 흐느끼며 눈물 떨어지네(悲懷感物來, 泣涕應情隕)”(‘도망시’ 제3수)라고 읊은 것처럼.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