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96〉상실감을 맛보다
영화 ‘피그’에서 다리우스는 롭이 요리한 과거 아내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복받치는 감정에 흐느끼고 만다. 판씨네마 제공
죽은 이를 애도한다는 ‘도망’이란 말이 아내의 죽음을 애달파 하는 시의 전용 명사가 된 것은 서진(西晉)시대 반악(潘岳)의 ‘도망시(悼亡詩)’부터였다. 우리 한시 중에선 조선 후기 심노숭(沈魯崇·1762∼1837)의 도망시가 특히 마음을 울린다. 시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시의 전반부에선 아내가 매년 봄 쑥을 뜯어 만들어 준 음식을 중심으로 행복했던 기억들이 소환된다. 어느 날 시인은 제수씨가 차려준 밥상에 올라온 쑥을 맛보곤 울컥하여 목이 멨다. 아내 무덤 위에 돋은 쑥은 그 상실감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시와 영화는 모두 망자와의 사연이 서린 사물을 통해 아내 잃은 남편의 바닥 모를 상실감을 드러낸다. 일찍이 반악이 아내 잃은 상실감을 “사물에 느꺼워 슬픈 심회 돌아오고, 복받친 감정 따라 흐느끼며 눈물 떨어지네(悲懷感物來, 泣涕應情隕)”(‘도망시’ 제3수)라고 읊은 것처럼.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