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속 고통받는 민생 “하우스 농작물 다 얼어… 생계 막막” 내년 매립지 선정 재논의 잠정중단… 유치원-어린이집 통합도 좌초 위기 전문가 “민생 정책 신속히 집행을”
경기 용인시에서 엽채소를 키우는 박영근 씨가 16일 오후 천장이 여기저기 찢긴 비닐하우스에서 얼어붙은 상추를 바라보고 있다. 박 씨의 하우스는 지난달 경기 지역에 쏟아진 폭설로 피해를 입었다. 용인=조승연 기자 cho@donga.com
“비닐하우스 10개 중 9개가 무너져서 생계가 끊길 위기입니다.”
1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한 부추 농가 비닐하우스. 지난달 쏟아진 50cm가량의 폭설로 하우스는 힘없이 무너져 있었다. 부추 농사를 짓는 박기현 씨(45)는 아직 다 자라지도 못했는데 한파에 얼어 비틀어진 부추를 넋놓고 바라봤다.
지난달 26일부터 28일 사이 당시 폭설로 전국에서 약 4000억 원에 달하는 농가 피해가 발생했지만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23일이 지난 이달 18일에야 이뤄졌다. 대통령 재가가 필요한 사안인데 12·3 불법 비상계엄 사건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을 지나면서 논의가 지연된 탓이다. 최근 곳곳에서 정부 정책이 중단되거나 미뤄지는 등 비슷한 사례가 더해지면서 현 국정이 ‘레임덕’이 아닌 ‘데드덕(dead duck·죽은 오리)’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는 폭설 3주가량 뒤인 18일에야 전국 7개 시군 및 4개 읍면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지난달 폭설, 강풍, 풍랑 피해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등의 피해를 입은 곳들이다.
윤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수도권 매립지 마련도 멈출 위기에 처했다. 앞서 인천시는 서울시, 경기도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더 이상 못 받겠다며 반발했고, 윤 대통령은 새로운 쓰레기 매립지 마련을 공약했었다. 올해 6월 매립지 선정이 불발돼 내년 초 재논의 예정이었는데 대통령 탄핵, 환경부 장관의 사의로 잠정 중단됐다. 17일 인천 서구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는 여전히 수도권 쓰레기를 받고 있었다. 인근 주민 가모 씨(77)는 “먼지 때문에 주민들이 잔병치레가 잦고 밖에 빨래를 널면 새까매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 유보통합도 좌초 위기… “대승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전문가들은 국민의 이익과 복리에 도움이 되는 정부 정책이나 사업이라면 정치적 사변과는 무관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집행하기로 결정했던 정책들은 당연히 집행되어야 한다”며 “특히 사회 보장과 관련해 예산이 확보된 건 탄핵 정국과 무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석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정책은 어떻게 해서든 정치인들 간의 균형을 통해 집행되어야 한다”며 “오히려 탄핵 국면이니 여야가 더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포항=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