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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계엄의 밤’ 탱크부대장도 대기… 무슨 짓을 벌이려 했나

입력 | 2024-12-19 23:27:00


12·3 비상계엄 선포 4시간여 전부터 경기 성남시 판교의 국군정보사령부 100여단에는 특수임무 요원 30여 명과 함께 육군 2기갑여단 구삼회 여단장도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기갑여단은 장갑차와 전차 등을 운용하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기갑부대다. 구 여단장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이번 계엄을 설계했다는 의혹을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호출을 받고 판교 정보사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 당일 기갑여단장이 갑자기 정보사에 불려 가 대기한 사실은 여러 가지 의혹을 낳는다. 계엄 반대 시위가 대규모로 커진다거나 정치인 체포 등 작전에 어려움이 생길 경우 전차 등 기갑전력까지 투입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2기갑여단은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전차 35대를 동원해 중앙청과 국방부, 육군본부를 장악했던 부대다.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 검토 문건’에도 2기갑여단은 계엄군에 편성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계엄 선포가 야당에 대한 경고성 조치였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증이 아닐 수 없다. 계엄이 장기간에 걸쳐 준비됐음은 검경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미 작년 말 ‘비상조치’를 언급하며 계엄 의지를 나타냈다는 증언이 확보됐다. 계엄 이틀 전 전현직 정보사령관과 간부들이 사전 모의한 정황도 드러났다.

나아가 계엄 당시 병력 1500여 명이 투입됐고, 군 차량 100여 대와 헬기 12대가 동원됐음이 확인됐다. 계엄군은 저격용 총과 기관단총 등을 휴대했고, 실탄도 비록 개인 지급은 없었지만 1만 발 이상 불출됐다. 만약 국회에서 유혈 충돌이 일어났다면 현장 계엄군에게 어떤 명령이 내려왔을지, 거기에 전차 장갑차까지 동원됐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12·3 계엄 사태는 집권자가 더 큰 권력을 위해 불법적 수단으로 벌이는 전형적인 친위 쿠데타(self-coup)였다. 윤 대통령은 “두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과 국회의 기민한 저지, 계엄군의 소극적 사보타주로 실패한 것일 뿐이다. 애초부터 실패를 전제로 한 계엄이었다는 식의 해괴한 변명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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