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영토 포기 못한다”면서도… “돈바스-크림반도 회복 어려워” 키릴로프 러 사령관 암살 배후 자처 우크라 보안국 주목… “러 처단자” 모사드 모델 삼아 요인 잇단 암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에 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타협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대선 과정에서 ‘취임 24시간 내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공약해 온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승리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에 빠른 종전을 거세게 압박해 왔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어떤 식으로든 타협할 준비를 마쳤지만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했다”는 기존 입장도 고수했다. 러시아는 현재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일부 지역, 2014년 강제 합병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절대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또한 “영토 완전 수복”으로 맞서고 있다.
다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또한 현실적으로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되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8일 프랑스 매체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 “영토를 포기할 수 없다. 헌법도 영토 포기를 금하고 있다”면서도 돈바스와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통제하에 있어 “되찾을 힘이 없다”고 했다. 기존의 영토 포기 불가 입장은 고수하되 영토를 되찾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같은 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찾아 서방의 추가 지원, 나토 및 EU 가입 허용 등도 촉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보호할지에 관해 유럽이 분열되지 말고 공동의 입장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양측의 휴전이 성사된다면 양측이 현재 점령 중인 영토에서 새 국경선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또한 올 8월부터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주 수미 일대를 점령하고 있다.
● 우크라이나판 모사드 ‘SBU’도 주목
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군의 화학·생물학·방사선(화생방) 방어 부대를 이끌어 온 이고리 키릴로프 NBC 방호 사령관 겸 중장이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로 숨졌다. 같은 날 당국자들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모스크바=AP 뉴시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키릴로프 암살을 두고 “SBU가 자국에 적대적인 요인에 대한 가차 없는 암살로 유명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모델로 발전해 왔다”고 평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SBU가 “러시아 처단자”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전했다.
SBU는 전쟁 발발 후 푸틴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인 러시아 극우 선동가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기나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외곽에서 암살했다. 두기나는 부친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열렬히 지지했다. 또 지난달에는 러시아군의 흑해 미사일 함대 업무를 관할하던 발레리 트란콥스키 해군 대령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제거했다.
키릴로프 암살은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과 불과 7km 떨어진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스쿠터 폭탄을 이용해 진행됐다. 우크라이나는 키릴로프 암살 하루 전 그가 자국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국제법이 금지한 화학무기 등을 썼다며 기소했다. 바실 말류크 SBU 국장은 FT에 “침략자의 모든 범죄 행위를 응징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암살을 불사할 뜻을 밝혔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