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 이후 원화 가치 불안정 美 금리인하 속도 늦춰 달러 초강세 외국인 빠져나간 코스피 1.95% 하락
악재 겹친 금융시장 원-달러 환율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50원을 넘어섰다. 19일 환율은 오후 3시 반(주간거래 종료) 기준 1451.9원에 거래됐고 이후에 1453원 선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의 전광판.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원-달러 환율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1450원을 넘어섰다. 경제 펀더멘털 악화와 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불안정하던 원화값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이란 추가 악재에 카운터펀치를 맞은 것이다.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거래 종가(1435.5원)보다 17.5원 오른 1453.0원에 거래를 시작해 등락을 반복하다 오후 3시 30분 기준 1451.9원을 나타냈다. 주간거래 종가 기준 환율이 1450원을 넘긴 것은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처음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8일(현지 시간) 회견에서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이유로 기준금리 인하의 속도 조절에 나설 뜻을 밝혔다. 당초 내년 4회 금리 인하를 예상했던 시장도 2회 인하를 점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정치 불안-美금리인하 속도조절 ‘연타’ 맞은 환율 “1500원 갈수도”
환율 15년만에 1450원 넘어
경기침체에 경제 기초체력 약해져… 美금리 정책 변화에 유난히 ‘출렁’
“트럼프 관세 인상땐 1500원 넘을듯”
정부 “과도한 변동성엔 과감한 조치”
원-달러 환율이 이달 들어서만 50원 넘게 상승하며 15년 만에 1450원을 넘어섰다. 국내 정치 불안과 경제 체력 약화로 국내외 투자자들의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로 달러 강세가 이어지자 원화 값이 곤두박질친 것이다.경기침체에 경제 기초체력 약해져… 美금리 정책 변화에 유난히 ‘출렁’
“트럼프 관세 인상땐 1500원 넘을듯”
정부 “과도한 변동성엔 과감한 조치”
외환 당국이 국민연금과 외환 스와프 한도를 증액하기로 하는 등 시장 안정을 위해 총력전에 나섰지만 끝내 환율이 1450원대에 도달하면서 일각에서는 환율이 15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된다. 고환율은 외국인 투자금 이탈을 가속화하고 물가 상승, 경기 침체를 부추길 수 있는 만큼 연말 한국 경제에 큰 악재로 부상하고 있다.
이날 환율 급등은 미 연준이 예상보다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입장을 보인 영향이 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 인하 속도를 낮출 의지를 드러내며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 폭이 더 크다는 점에서 그간 탄핵 정국으로 누적된 정치 불안과 기업 실적 악화, 수출 둔화 등 국내 요인도 환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제민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022년 미국의 기준금리 급등으로 달러 인덱스가 110을 넘었을 때도 환율은 1430∼1440원 수준이었다”며 “현재 달러 인덱스가 108 수준인데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선 것은 최근 환율 급등에 국내 요인이 더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탄핵안 가결 이후에도 정치 불안이 계속되는 데다 경기 침체에 대한 마땅한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환율이 더 치솟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인상 공약이 실현되면 내년 1월에라도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한국의 정치 불안이 종료될 때까지 이례적인 고환율이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끝없이 치솟는 환율은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고환율은 물가 상승을 일으키고, 이는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가뜩이나 내수 침체와 성장률 저하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에 ‘3고(高) 위기’가 또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들의 경영난과 체감 경기 악화의 요인이 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18일 물가안정목표 설명회에서 “내년 환율이 1430원대가 유지될 경우 기존의 내년 물가 전망치(1.9%)에서 0.05%포인트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만일 내년에 환율이 1450원을 훌쩍 넘어설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의 목표치인 2.0%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금리 인하를 통한 내수 진작 카드를 쓰기 어려워진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소비 위축, 기업 투자 감소가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환율 고공 행진으로 인해 외환 당국이 환율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외환보유액 하락은 국내외 투자자의 심리적 위축을 불러와 국내 외환·금융 시장에서 달러 유출 속도를 급격히 빠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총력을 다해 환율 방어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과도한 변동성에는 추가적인 시장 안정 조치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한은 등 외환 당국도 국민연금과 외환 스와프 거래 한도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증액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필요한 달러를 현물환 시장에서 사들이는 대신에 외환 당국에서 구하도록 해, 외환시장의 안정을 꾀하려는 조치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역시 19일 은행들에 최근 외환시장의 변동성 우려를 고려해 기업들의 외화 결제와 대출 만기의 탄력적 조정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