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여름, 그러니까 현 정부 집권 초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과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1874~1965)을 비교하는 ‘도발’을 두 번 썼다. 성질 급한 독자들은 제목만 보고 냅다 내려가 ‘비교할 걸 비교하라’고 악플을 달았던 글이다. 어떤 분들은 지금도 내가 윤비어천가(尹飛御天歌)를 썼다고 야단을 친다.
내 글에 책임을 지기 위해 다시 들여다봤다. ‘윤석열의 처칠 스타일’을 찬찬히 읽은 분은 알아챘겠지만 괜히 처칠과 윤석열을 비교했던 게 아니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자신이 처칠을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김순덕의 도발]윤석열의 처칠 스타일
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220522/113549648/1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왼쪽 사진)가 1945년 6월 27일 영국 미들섹스주 옥스브리지에서 총선 선거운동을 벌이다 ‘어퍼컷’ 자세를 취하는 모습. 오른쪽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2년 2월 15일 대선 공식선거운동을 시작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모습. 출처 임페리얼전쟁박물관, 동아일보DB
● “검증 못해 몰랐던 그 점 때문에 대실패”
칼럼에서 독자들이 눈여겨 봐줬으면 했던 대목은 ‘두 지도자의 가장 결정적인 공통점이 과히 호감 받지 못하면서, 평소라면 가능성이 없었는데도, 시대적 상황에 의해 리더가 된 최극단의 리더’라는 점이었다.
끝부분은 거의 예언적이라 해도 좋다. “꼼꼼한 검증과정을 건너뛰는 바람에 발견 못 했던 바로 그 점 때문에 크게 실패할 공산도 크다. 윤 대통령의 처칠 스타일이 재미있고, 또 겁나는 건 이 때문이다.”
올해 9월 19일 체코를 공식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그때 우리가 주목해야 했던 건 김건희의 권력욕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놓쳤던 건, 그래서 우리가 검증하지 못했던 건 따로 있었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 아내가 챙겨줘야만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윤석열 리스크’다!
‘공천 개입 의혹’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명태균 씨가 공개한 김건희 여사와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
2022년 당시, 문재인 정권을 반드시 종식시키고 보수정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다수 국민은 ‘윤석열 리스크’ 검증을 안 했던 게 사실이다. 아니 김건희 리스크는 몰라도 설마, 서울법대를 나온 검찰총장 출신 덩치 큰 대통령이, 아무리 애처가 아니라 애처증이 심하다 해도 결국 어부인 때문에 계엄령까지 선포했다 탄핵소추 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 자기 잘못을 고치려 노력해 봤나
“영국인의 국민성은 대체로 처칠의 성격과 비슷해서 유머러스하지만 때로 호전적이고, 무례하지만 전통을 고수하고, 한결같지만 감상적이고…음식과 술에 예민하다”고 했다. ‘그렇게 치면 윤 대통령도 조금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무례하지만 전통적이고 한결같지만 감상적이기도 하다는 점 등은 한국 꼰대의 특징 아니던가’라고 나도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4월 부산에서 전국 시도지사, 장관, 부산 지역구 의원 등과 저녁 식사를 할 당시 도열해 있는 참석자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존슨은 “처칠이 달성한 가장 크고 중요한 승리는 자기 자신을 이긴 것”이라고 했다. 어릴 적 말을 더듬었던 처칠은 이를 고치려고 자신이 존경하는(그러나 사랑은 받지 못한) 아버지의 연설을 통째로 암기하기까지 했다. 부친에게 대학생 때까지 고무호스로 체벌을 받았다는 윤석열은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해 봤는지 모르겠다. 과도한 음주? 입때까지 못 고쳐 ‘음주성 인지장애’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듣기보다 말을 많이 하는 버릇은? 격노는?
● 위험 뚫고 성공한 리더, 고집부리다 망해
처칠이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소개했다. 그때 대통령 취임 한지 몇 달 안 된 윤석열이 위대한 지도가가 되면 참 좋겠지만 죽어도(아니 적어도) 실패한 지도자는 되지 말라며 이렇게 썼다.
▶[김순덕의 도발]윤 대통령과 ‘처칠 팩터’
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220719/114523666/1
“리더십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최극단의 지도자는 위험 감수를 통해 성공했고, 그래서 지나친 낙관에 빠져 남들이 말려도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중략)특히 잃을 것이 많은 상황에선 조언자의 판단을 따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실수를 인정하는 겸허함이 사태를 헤쳐 나가는 결단력과 짝을 이룰 때, 운 좋은 지도자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탄생한다는 거다.”
3일 대통령실에서 비상계엄 선포문을 읽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내가 쓴 ‘처칠’만 기억하고 아부하는 글로만 아는 분들이 있어 다시 썼다. 작은 애프터서비스라고 여기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아무리 급해도 다음 대선에선 꼼꼼한 검증을 건너뛰어선 안 된다는 당부를 드리면서.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