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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법정에 간 아마조네스, 삶의 터전 지켜내다

입력 | 2024-12-21 01:40:00

주민 땅 빼앗으려 한 석유 기업
아마존 85개 마을 승리의 기록
원주민서 환경 운동가 된 저자… “아마존 구하기는 곧 세상 구하기”
◇우리가 우리를 구한다/네몬테 넨키모, 미치 앤더슨 지음·정미나 옮김/552쪽·2만5000원·알에이치코리아



저자 네몬테 넨키모와 아마존의 와오라니족 주민들이 2019년 자신들의 땅을 지켜낸 에콰도르 법정에서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넨키모는 “아마존을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고향인 어머니 대지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 Amazon Frontlines


2019년 4월 에콰도르의 한 법정에 아마존 원주민들의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주민 연대를 이끈 이 책의 저자 넨키모는 이렇게 회상했다.

“판사는 판결문 낭독을 이어 나갔지만 우리는 이미 듣고 싶던 말을 다 들었다. 정부가 거짓말을 했다고! 석유 경매는 불법이라고! 서류는 무효라고! 우리 땅은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이들의 연대는 원주민들의 땅을 석유 기업들에 경매로 부치려는 계획에 맞서 승소하고 서울 면적의 3.3배인 2000㎢를 지켜냈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 기업형 농업과 석유 채굴로 망가져간다는 얘기는 그동안 많이 들어 왔다. 하지만 이곳을 지킨 경험을 원주민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이 책은 사용하는 언어까지 각각 다른 85개 마을이 연대해 승리한 기록이자 이른바 ‘원시’ 부족의 딸로 태어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조상의 땅을 지켜낸 저자의 회상록이다. 핏발 선 호소보다는 숲과 강물, 신화와 재래 관습이 함께하는 먼 세계 속의 일화들이 풍성히 담겨 흥미롭게 읽힌다.

열세 남매 중의 딸로 태어난 저자 넨키모의 유년기는 독 묻힌 바람 화살로 사냥을 하고 병이 들면 주술사를 찾아가는 시절이었다. 코오리(백인)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맛난 음식과 세탁기 등 신기한 도구들을 지닌 코오리는 배설도 하지 않을 거라고 원주민들은 상상했다.

코오리는 ‘돈’과 ‘종교’라는 두 얼굴로 접근했다. 넨키모의 아빠도 활주로 만드는 일에 동원되면서 가족은 터전을 떠났다. 석유회사는 자신들을 반대하는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불렀고 환경운동가는 악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백인 소녀 스테파니의 파란 눈과 흰 피부를 동경한 넨키모는 희고 고른 이를 갖고 싶어 어금니를 뽑기까지 했다. 스테파니처럼 되고 싶어 세례를 받고 ‘이네스’가 된 뒤 가족들의 동의 아래 고향을 떠나 코오리들의 선교단에서 생활하게 됐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선교사 가족의 성착취였다.

선교단을 떠나고 7년이 흘렀다. 내면의 상처를 숨기고 살던 넨키모에게 새로운 영감을 준 것은 ‘부족을 지키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와 언어’라는 오빠 오피의 말이었다. 든든한 조력자도 생겼다. ‘코오리’로 환경운동 작가이자 이 책의 공저자인 미치는 용기와 사랑을 가져다주었다. 풍습도, 말도 다른 아마존 마을들의 합심과 연대를 이끌어 내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전 세계의 공감과 법정에서의 승리를 가져왔다.

인터넷으로 세계와 소통하면서 저자는 이 싸움이 세상을 지키는 싸움이란 것을 알게 된 점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숲을 잃게 되면서 바다 건너편에서 홍수가, 다른 대륙에서 화재와 가뭄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마존을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고향인 어머니 대지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의 활동에 지지의 목소리를 내온 배우 에마 톰슨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 폭풍 앞에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원제 ‘We will not be saved’(2024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