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경제 人터뷰]다큐 제작 참여한 박용만 前 상의 회장 뇌사로 안락사 권유 받은 佛 소녀 ‘9일 기도’로 살아난 소식에 감명 24, 25일…‘메일린의 기적’ 평화방송 방영 2021년 대한상의 회장 물러난 뒤 강북 홀몸노인 위한 봉사에 전념
박용만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이사장(전 대한상의 회장)이 22일 오후 성탄절 앞두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경제 걱정이 많은 시기일수록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TV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변신한 박용만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이사장(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2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현재 국가와 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하고 우려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회장은 성탄절인 24, 25일 CPBC가톨릭평화방송에서 방송되는 특별 다큐멘터리 ‘죽음에서 돌아오다, 메일린의 기적’에 출연하고 제작도 맡았다. 그는 수십 년 전 동대문시장에서 노동자들이 끌고 다니며 일하던 나무 손수레,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선물할 정도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다.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7년 8개월 동안 대한상의 회장을 맡은 박 전 회장은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재계의 ‘어른’으로 꼽힌다. 퇴임 이후 언론 노출을 자제해온 박 전 회장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 다큐멘터리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박 전 회장은 최근 정국 혼란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도 “산들바람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풀뿌리경제가 걱정이다. 소상공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눈에 띄게 어려워하시는 게 보인다”며 연말을 맞아 따뜻한 희망이 필요한 시기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15년 이상 재계 ‘회장님’에서 퇴임 후 자원봉사에 전념하는 가운데 우울한 경제 상황을 더욱 절감하게 된 면도 있다. 2021년 3월 대한상의 회장 퇴임 후 그의 삶은 10년 전 서울역에서 처음 시작한 독거노인 봉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박 전 회장은 “80, 90대 노인이 많이 사시는 강북의 한 산비탈 동네에 주방을 두고, 매주 월·목요일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고 있다”며 “신문에 실리는 일들에는 여력을 쏟을 수 없이, 하루하루의 삶이 절박하고 고단한 분들”이라고 했다.
교황청 신앙교리부 차관보 필립 퀴르블리에 대주교(사진 왼쪽)와 대화하고 있는 박용만 이사장(오른쪽). 평화방송 제공
주말 봉사자는 받지 않는 것도 그의 철칙이다. “주말에 하면 봉사자 숫자를 채우기는 쉽다. 도움의 손길은 고맙지만 늘 꾸준히 오는 봉사자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분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는 “어떤 할머니는 반찬 배달을 가면 집 열쇠를 감춰놓고, 어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워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으니 오래 기다려야 한다”며 “그분들의 삶을 이해해야 하고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일회성 봉사를 거절하는 이유도 그래서다”라고 했다.
이번 다큐도 어려움 속에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주고자 시작했다. 박 전 회장은 올 5월 바티칸에서 교황청 신부를 만나 우연히 ‘메일린의 기적’에 대해 듣게 됐다고 한다. 음식물이 기도에 걸려 뇌사에 빠진 후 의료진으로부터 안락사 권유까지 받은 프랑스의 세 살 여자아이 메일린이 가족의 간절한 ‘9일 기도’를 통해 살아난 이야기였다. 이후 그 아이가 마음에 들어와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도저히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지 않는 이야기라 직접 취재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박 전 회장은 “7월 메일린 가족을 찾아가 만난 이후 프랑스 리옹, 니스, 안시, 바티칸 등 11개 도시를 다니며 바티칸이 승인한 현존하는 기적의 현장과 목격자, 증인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천주교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바티칸 4개 부서 차관보급 고위 주교들 인터뷰도 담았다.
그가 이번 다큐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박 전 회장은 “서울대병원 교수 등 의학 전문가들을 인터뷰해보니 이번 기적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더라”며 “나는 평생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아야 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불가사의같은 ‘메일린의 기적’을 알게 된 후 신의 섭리 앞에 겸손해지고 오히려 평화와 행복감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박용만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이사장(전 대한상의 회장)이 22일 오후 성탄절 앞두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장은지 기자 j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