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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모펀드 “高환율, 매수 적기”… 韓기업 ‘쇼핑’ 러시

입력 | 2024-12-23 03:00:00

환율 1450원대… 15년만에 최고가
몸값 싸진 국내 기업들 적극 베팅
화장품-공구 업체 등 인수 잇따라
“투자액 급증, 수익률 감소 우려”… 국내 업계는 해외투자 몸사려




15년 만에 원-달러 환율이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달러화를 앞세운 해외 사모펀드(PEF)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국내 자산 쇼핑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반대로 국내 기업·기관들의 해외 투자는 투자 비용 급증과 수익률 감소 우려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해외 PEF, 고환율 등에 업고 국내 자산 쇼핑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유럽계 PEF인 CVC캐피털은 독도토너로 유명한 국내 화장품업체인 서린컴퍼니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CVC캐피털이 국내 경영권 인수 거래에 나선 것은 2019년 여행 플랫폼 업체인 여기어때를 인수한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CVC캐피털은 서린컴퍼니의 인수 가격을 지분 100% 기준 8000억 원 정도로 책정했다. 이는 경쟁 입찰에 참여했던 국내 업체보다 10∼20% 높은 수준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서린컴퍼니의 예상 인수 가격은 5000억∼6000억 원이었지만, 환율 상승으로 인해 달러화로 투자하는 CVC캐피털이 고가 베팅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 9월 30일 1307.8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20일 1451.4원까지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에 승리하고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원화 가치가 11%가량 빠졌다. 달러화 기반의 해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국내 자산을 매수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 조성된 셈이다. 실제 지난달부터 해외 PEF들의 국내 자산 투자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홍콩계 PEF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이달 6일 롯데그룹으로부터 렌터카업체인 롯데렌탈을 1조6000억 원가량에 사들이기로 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글로벌 3대 PEF 중 하나인 블랙스톤도 지난달 27일 국내 산업용 절삭공구 제조업체인 제이제이툴스를 약 3000억 원에 사들인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당초 치열한 가격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환율 급등으로 인해 국내 자산 가격이 내려가면서 달러화 기반으로 투자하는 해외 PEF들이 수월하게 인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부동산이나 인프라 자산에 대해서도 해외 PEF의 투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미국계 PEF인 베인캐피털은 지난달 서울 구로구의 랜드마크 빌딩인 ‘G밸리비즈플라자’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며, 캐나다 자산운용사인 브룩필드도 한마음에너지의 태양광 사업부 인수자로 나섰다.

국내 펀드들은 해외 자산 투자 차질

국내 PEF들은 환율 상승으로 되레 피해를 보고 있다. 연이은 경쟁 입찰에서 달러화 기반의 해외 PEF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 급등으로 해외 투자가 차질을 빚는 경우도 있다. 국내 PEF인 KCGI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은 LS그룹의 미국 전선 자회사인 에식스솔루션즈에 2억 달러(약 288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는데, 지난주 KDB캐피탈이 투자 의사를 철회하면서 자금 조달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화 투자액이 늘어난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LS그룹은 이와 관련해 “현재 투자금 조달은 완료된 상태”라며 “KDB캐피탈이 투자자 중 한 곳이었던 것은 맞지만 빠진다고 차질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해외 투자 자산이 많은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 등은 환율 상승 효과로 사상 최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제기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까지 수익률은 9.18%로, 사상 최대 수익률을 기록했던 지난해 3분기 수익률(8.66%)을 앞서고 있다. 해외 주식, 대체 자산에 대한 평가 수익이 상승할 경우 지난해 최고 수익률(13.6%)을 웃돌 수도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