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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일어난 일은 12월 3일 벌어질 일의 전조였다[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입력 | 2024-12-22 23:00:00

〈94〉 내가 뽑은 올해의 보도사진
카이스트 졸업생의 고성 항의에… 대통령 경호원이 입 틀어막아
권력의 촉수가 호흡을 막는 듯… 대통령실 “불가피한 조치” 해명
‘불필요한 조치’는 아니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2월 16일 방문한 대전 유성구 KAIST 학위 수여식에서 윤 대통령에게 항의하던 한 졸업생이 대통령경호처 요원의 제지를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축사 중 “연구개발(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친 그는 곧바로 경호원들에게 팔다리를 들려 끌려 나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법과 규정, 경호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뉴스1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올해의 보도사진이다. 물론 이에 못지않게 강렬한 사진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사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진, 여의도에 운집한 시민들의 사진, 그리고 해외의 전쟁 사진 등등. 해외 전쟁 사진은 충격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온다. 끔찍하긴 해도 그곳은 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끔찍하긴 해도 전장은 폭력이 예상되는 장소니까. 2024년 12월 3일 밤 충격의 일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군대를 본 데서 온다.》


학생 한 명이 메신저에 소리치듯 적었다. “근데 지금 무슨 일이죠?” “다들 TV 켜셔요.” “당장.” ‘당장’이라는 부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오랜만에 켠 TV에서는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 중이었고, 얼마 안 있어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국회로 들어왔고, TV와 휴대전화를 타고 그 장면들은 일상으로 난입해 왔다.

이 계엄 선포 사태의 어느 측면을 찍어도 올해의 보도사진으로 손색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올해 KAIST의 졸업식장 사진을 뇌리에서 떨쳐버릴 수 없다. 그리고 이 사진은 12월 3일 계엄 선포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2024년 2월 16일 KAIST의 학위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축사를 했다. 그 도중, 한 졸업생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항의하는 취지로 고성을 질렀다.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자마자 그는 곧바로 대통령경호처 요원들에게 팔다리를 들려 끌려 나갔다.

이 상황을 찍은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부져 보이는 경호원이 졸업식 예복을 입은 신진 박사의 입을 처누르고 있는 부분이다. 이것은 권력의 촉수가 생물의 호흡기를 막는 장면처럼 보인다. 물리적 폭력이 말의 힘을 찍어 누르는 장면처럼 보인다. 상대적 연장자가 상대적 연소자를 힘으로 찍어 누르고 있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다음에 눈에 들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다. 아직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조차 모르는 채, 망연자실하여 눈앞의 폭력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서 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예상치 못했던 소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 사진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폭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그 시선을 개의치 않는다. 칼은 칼집 안에 있을 때 가장 강하다고 하지 않던가. 폭력이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칼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권력자는 실패하기 시작한다.

그 실패한 권력자는 이 사진 프레임 내에서 보이지 않는다. 사진을 읽는 일은 결코 프레임 안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 사진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프레임 밖에 엄존하면서 이 사태를 초래한 권력자를 떠올려야 한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이 사달이 벌어졌는가. 그날 대통령은 “과학 강국으로의 퀀텀 점프를 위한 R&D 예산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는 취지의 축사를 했다. 훗날 이러한 축사 내용만 보면, 타당하기 짝이 없는 그럴듯한 말의 성찬일 것이다. 도대체 이 축사가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그러나 글을 읽는 일은 결코 눈앞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 축사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축사 내용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고, 축사를 포함하되 축사를 넘어서 있는 맥락까지 읽어야 한다.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는 항의의 내용은 단지 R&D 예산이 부족하다는 외침이 아니다. 과학 강국으로의 퀀텀 점프에 반대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복원”이라는 말이 지시하듯이, 시혜를 베풀 듯 예산 확대를 말하는 바로 저 사람이 바로 그 예산을 느닷없이 감축한 장본인이라는 사실, 바로 그 사실에 대한 항의인 것이다. 마치 자신이 사태의 원인이 아닌 듯 구는 것에 대한 항의인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은 저 예복 입은 신진 박사가 특정 정당 소속이었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다.

이 일이 일어난 후 대통령실은 “법과 규정, 경호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정말 불가피한 조치였나? 경호팀에 그렇게 하라는 규정이 있었다면, 당일 그 자리에 있던 경호원에게는 불가피한 조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이 솔직했다면 그러한 진압 사태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한 수사적 역량이 있었다면 그러한 진압 사태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애초에 느닷없이 R&D 예산을 감축하지 않았다면 이런 폭력 사태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이 예산 감축의 원인이 아닌 듯이 굴지 않았다면 이런 폭력 사태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민감하게 의식했다면 이런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2024년 2월 16일에 벌어진 일은 2024년 12월 3일에 벌어질 일의 전조였다. 대통령은 그날 축사에서 졸업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나아가는 길에 분명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 길고 길었던 2024년 12월에 분명해진 것은 대통령 자신이 바로 그러한 어려움이며, 국민 대다수는 그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했다는 사실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