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1964년 5월 오후 8시경 벌어졌다. 당시 18세이던 최말자 씨는 뒤따라오던 낯선 남자의 공격에 넘어졌다. 남자는 도망치려는 최 씨를 두 번 더 넘어뜨린 끝에 배 위에 올라탔다. 그러곤 최 씨의 목을 졸라 입을 벌리게 한 뒤 강제로 키스했다. 최 씨가 고개를 흔들며 저항하다 남자의 혀를 깨물어 1.5cm가 절단됐다. 경찰은 최 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했지만 검찰이 이를 뒤집었다. 최 씨를 중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남성의 강간미수는 무혐의 처분했다.
▷재판에선 공개적으로 2차 가해가 이뤄졌다. 상황을 재연한다며 현장 검증을 나갔는데 주민들이 최 씨에게 몰려와 “처녀 총각이 키스한 게 뭐 대단한 일이냐, 네 입술은 금덩어리냐”라고 했다. 재판부는 최 씨에 대한 순결성 감정에 이어 정신 감정을 의뢰했다. “미움과 사랑의 갈등에서 온 히스테리 반응”이라는 게 감정 결과였다. 재판부는 최 씨에게 남성과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니 평생 책임지는 게 어떠냐는 취지였다. “차라리 벌을 받겠다”는 최 씨에게 법원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1995년 대법원이 발간한 법원 100년사에 ‘저명사건 판결’로 기록됐다. 1980년대 이후 성폭력에 저항하다 가해자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행위를 정당방위로 본 판례가 잇따라 나오던 때였다. 2020년 부산에서 여성이 가해자의 혀 3cm를 절단시킨 사건에서도 남성만 강간치상으로 처벌됐다. 하지만 ‘감옥 살다 온 여자’로 손가락질받던 최 씨는 공장일과 노점상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며 50년 넘게 숨죽이다 2018년에야 재심을 청구했다.
▷확정된 판결을 새로 재판하는 재심은 요건이 까다롭다. 원심의 증거가 허위로 판명되거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을 때, 재판에 참여한 판검사 등이 직무 관련 죄를 지었을 때 가능하다. 최 씨 사건은 재판에서의 2차 가해뿐 아니라 성폭력 저항 행위를 정당방위로 폭넓게 인정하는 판례들이 쌓이며 법원의 흑역사가 된 사건이다. 지금의 상식에 비춰 보면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판사들이 책임을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몇 달 뒤 재심이 시작될 텐데 형식적 법리에 매몰되기보단,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법원의 과오를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