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마디로 國體 혼란 상황 대선 유불리 떠나 헌정 질서 확립 시기 한 대행의 ‘정치 곡예’ 역사에 기록될 것 ‘김건희-내란 특검’ 해법 적극 주도하길
정용관 논설실장
고건 전 국무총리가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스스로 ‘고난(苦難) 대행’이라고 칭한 적이 있지만 요즘 한덕수 권한대행의 처지는 그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고난(高難) 곡예’를 펼쳐야 하는 형국이다. 한 대행 체제는 극히 취약해 보인다. 무엇보다 국정 1인자의 반헌법적 계엄 망동을 몸으로라도 저지하지 못한 국정 2인자로서의 ‘정치적 원죄’가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
이를 고리로 “내란 공범” “선제적 탄핵” 등 엄포를 쏟아내며 김건희-내란 특검 수용 등을 압박하는 민주당이 일견 칼자루를 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주요 10개국(G10) 국가에서 대통령에 이어 그 권한대행까지 탄핵하는 일이 벌어지면 아마 기네스북에 오를 신기록이 될 것이다. 미국은 한덕수 체제를 “지지하고 신뢰한다”고 공식화했다. 한 대행은 일본 총리와도 긴밀한 협력 유지를 확인했다. 수권 정당을 지향한다는 민주당으로선 국제 여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가 3분의 2가 맞느니 재적 과반이 맞느니 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지만, 계엄 해제 과정에서의 침착한 리더십이 돋보였던 우원식 국회의장이 탄핵의 총대를 메려 할까 싶기도 하다. 권한대행 탄핵은 정부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권한대행의 대행’ ‘그 대행의 대행’으로 이어지는 혼란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정생존자는 드라마나 영화 속 설정일 뿐이다.
헌법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해선 아무런 규정이 없다. 선출 권력이 아닌 만큼 ‘현상 유지’만 가능하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다수 견해라고 한다.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창설적 권한까지 행사할 수는 없으며 소극적 권한 행사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그런 ‘법적 이론’에는 공감하지만 ‘정치적 실제’는 다르다고 본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헌법에 권한 범위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 궐위 등이 어떤 경위로 발생할지, 그에 따른 안보상 위기 등 국가적 혼란이 어떤 양태를 띨지 예견할 수 없으니 그 시대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권한을 행사하라는 뜻이 깔려 있는 것 아닐까.
김건희 특검과 내란 특검 문제도 그 연장선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극단적 ‘현상 유지’ 논리라면 모든 법이든 특검이든 다 거부해야 하고 헌재 재판관도 국회 몫이든 뭐든 무조건 임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그런 환원 논리로 작금의 혼란을 감당할 순 없다. 지금은 ‘국체(國體)’의 위기 상황이다. 그동안 어렵게 쌓은 민주공화정 시스템이 흔들리는 혼돈의 순간이란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는지를 놓고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김 여사 문제가 5할 이상이라고 본다. 명태균 게이트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할 즈음 계엄령이 선포된 걸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대통령 배우자의 국정 개입, 이에 따른 국체 훼손이 급기야 45년 만의 계엄 사태로 이어졌다. 입법 권력 무력화를 위한 친위 쿠데타, ‘위헌적 변란(變亂) 시도’였다. 이 또한 국체와 직결된 사안이다. 김 여사 문제로 시작한 계엄 사태를 ‘현상 유지’ 논리로 덮을 수 있나.
검찰 경찰 공수처가 자신의 임명권자에 대한 수사 경쟁을 벌여 온 걸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가 공수처 설립 취지에 맞는지, 그럴 역량은 되는지도 의문이다. 계엄 수사의 일원화를 위해선 특검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헌정 질서 위협의 실체를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초석을 놓으려면 권위 있는 수사 주체가 필수적이다. 본래 현재 권력을 겨냥한 특검은 ‘야(野)의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 공세가 아니라 진상 규명이 목적이라면 야당도 특검 추천 방식 등에서 흠결이 없도록 대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